"AI(인공지능)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이 AI를 만들고, 인간이 AI를 씁니다. 결국 인재를 키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교육은 인재에게 투자하는 가장 값진 사업입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롯데관광개발 본사에서 만난 김기병(81) 롯데관광개발 회장은 "81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학교를 세운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1979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세웠던 미림여고는 지난달 30일 개교 40주년을 맞았다. 8학급, 전교생 490명으로 시작했던 학교는 지금까지 2만 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는 '가난한 지역에 배움의 기회를 주자' '훌륭한 엘리트 여성이 많아져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는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신림동 학생들이 마땅한 고등학교가 없어 강남까지 버스로 통학하는 것을 보고, 신림동에 여고를 세우기로 했다.
그러나 미림여고를 처음 세웠을 때는 주변에서 '미쳤다' 소리를 들었다. "강남 좋은 땅에 학교를 세우지 왜 신림동 산골에 세우느냐, 남자 고교를 세워 야구부·축구부를 만들어야지 왜 여고를 세우느냐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내 소신대로 학교를 세우겠다며 전부 무시했어요."
미림학원 이사장을 맡은 김 회장은 개교 이후 현재까지 재단 전입금을 한 번도 거른 적 없다고 한다.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가 일어났을 때나, 2013년 용산개발사업이 코레일과 분쟁 끝에 무산되면서 회사가 법정관리까지 갔을 때도 그는 학교를 위한 돈을 꼬박꼬박 냈다. 김 회장은 "누가 알아주길 바라서 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사업이 어렵다고 돈을 못 낼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학교를 세울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5년 4회 졸업생이 대학입학 학력고사 수석을 했고, 이화여대 수석은 두 번 배출했고…." 김 회장은 졸업생들의 성적도 "자식 같은 학생들이 노력한 흔적이라 잊을 수가 없다"며 또렷이 기억했다. 졸업생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동호회가 매년 여는 연주회도 "훌륭하게 성장한 졸업생들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며 34년 동안 빠짐없이 찾았다.
김 회장은 정보화사회 도래를 예상하고 1991년 미림여자전산고등학교도 세웠다. 현재 미림여자정보과학고등학교로, 국내 마이스터고(직업계 특수목적고) 중 유일한 여고다. 지난해 취업률 87%를 기록했다. 김 회장은 "세상이 돌아가는 걸 보니 컴퓨터 교육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고리타분한 교육보단 아이들에게 세상을 넓게 보는 법도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학교와 회사 모두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는 "3년 전부터 일본과 중국 유학생을 받기 시작했다"면서 "학생들은 외국 학생들과 교류를 통해 시야를 넓혀 세계로 뻗어 나가고, 회사는 동해 크루즈 관광 코스와 복합리조트 개발을 통해 세계인을 한국으로 끌어들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