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NATO) 사무총장, 에릭 슈밋 전 구글 CEO,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전 세계의 권력자·억만장자·왕족·석학 등 130여 명이 스위스의 호반(湖畔) 도시 몽트뢰에 모인 모습을 영국 가디언이 2일(현지 시각) 카메라에 포착했다. 5월 30일~6월 2일 3박4일간 열린 '빌더버그 그룹(Bilderberg Group)' 모임에서다.

가디언은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 빌더버그 모임의 현장을 취재해 참석자들이 술을 마시며 환담을 나누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빌더버그 그룹이 어떤 모임이길래 이런 거물 130여 명이 한꺼번에 모였을까.

(왼쪽부터)키신저, 폼페이오, 스톨텐베르그, 슈밋

빌더버그 그룹은 유럽·북미의 정·재계 실력자 130여 명이 모여 주요 국제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54년 폴란드 출신의 정치가 조지프 레팅거와 네덜란드 율리아나 전 여왕의 남편 베른하르트 공작 등이 제안해 시작됐다. 유럽과 미국의 대화를 촉진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자는 취지였다. '빌더버그'라는 이름은 첫 회의가 열린 네덜란드의 호텔 이름에서 따왔다. 매년 5~6월쯤 미국·캐나다·유럽의 호텔이나 고성(古城)에서 열린다. 올해로 67회째를 맞았다.

이 모임의 특징은 '채텀하우스 룰'에 따른 철저한 '비밀주의'다. 채텀하우스 룰은 영국 왕립 국제문제연구소 채텀하우스가 1927년 도입한 토론 규칙이다.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위해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비밀에 부친다.

이에 따라 빌더버그 그룹 모임에서 어떤 참가자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전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참가자 명단과 기후변화·자본주의의 미래 등 포괄적인 의제만 공개된다. 언론 취재도 금지된다. 이번 모임에는 블룸버그의 존 미클레스웨이트 편집국장 등 언론인도 다수 참석했지만 이들 역시 회의 내용은 공개하지 못하게 돼 있다.

전 세계 권력자들이 모이는 회의인 데다 모든 게 베일에 싸여 있다 보니 음모론도 끊이지 않는다. 참석자들이 배후에서 주요 국제 현안을 조종한다는 것이다. 이 모임이 각국 정부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2년 빌더버그 모임에서는 관련 논의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고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05년 빌더버그 모임에 참석한 몇 달 뒤 총리가 됐다.

특히 올해 모임에서는 군사적 성격이 두드러졌다. 홈페이지에 공지된 의제 중에는 ▲소셜미디어의 무기화 ▲사이버 위협 ▲우주 공간의 중요성 등 군사적 주제가 다수 제시됐다. 가디언은 "펜타곤(미 국방부) 관계자와 나토 수장이 한데 모여 환담을 주고받는 것은 섬뜩한 일"이라며 군사 현안이 논의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