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강수량 지역이 있는 인도가 50도 넘는 폭염에다 역대 최악의 물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지난 1일 인도 북부 라자스탄주의 도시 추루가 낮 최고 섭씨 50.6도까지 올라가면서 관측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날 수도 뉴델리는 46도를 넘겼으며 히말라야산맥이 있는 히마찰프라데시주까지 44.9도를 기록했다. 인도 기상청은 뉴델리 인근 수도권에 적색경보를 발령하고 한낮 외출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달 말부터 이어진 더위로 열사병 환자가 속출해 이미 수십명이 사망했다. 기상청은 9일(현지 시각) 전날 최고기온 47.4도를 기록한 라자스탄주에 적색경보를 발령하고 나머지 북서부 지역에는 '황색경보'를 발령했다.
폭염에다 가뭄까지 겹치면서 물이 부족해 빨래는커녕 씻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도 중부 마하라슈트라주의 한 마을은 주민 2300명 중 90%가 물을 찾아 피난을 떠났다. 힌두스탄타임스 등 인도 현지 언론은 "인도는 역대 최악의 물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인도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 있다. 인도 동북부 메갈라야주 모신람 지역으로 최대 연평균 강수량이 1만1873㎜에 달한다.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1300㎜)의 9배가 넘는 수치다. 인근 체라푼지 지역은 1860년 8월부터 365일간 강수량이 2만6470㎜를 기록했다. 아직 깨지지 않은 세계 기록이다. 인도 동북부 지역 강수량이 많은 이유는 벵골만에서 오는 축축한 열대성 저기압이 히말라야산맥에 부딪히면서 비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 있는 국가가 왜 물 부족으로 신음하는 일이 발생할까. 인도 전역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도 전체 연평균 강수량은 1073㎜ 정도다. 그런데 6~9월 우기 동안 한 해 내릴 비의 80%가 한꺼번에 내린다. 일년 중 우기를 제외한 나머지 기간은 사막과 같이 건조하다는 이야기다.
항시 비가 오는 나라가 아니다 보니 빗물 배수 시스템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뉴델리·뭄바이 등 대도시뿐 아니라 외국 기업이 즐비한 신도시 구르가온도 잠깐 내린 소나기에 도로가 물에 잠길 정도다. 그러다 보니 빗물을 저장해놓는 인프라도 취약하다. 인도 중앙물위원회에 따르면 한 해에 내리는 비의 양은 4조㎥이지만 물 저장 능력은 10%에 불과한 약 4000억㎥이다. 14억 인구 대국이며 세계 2위 농업국인 인도의 물 수요를 인프라가 못 따라가는 것이다.
올해는 물 부족 사태가 더 심각하다. 인도 기상청은 보통 6월 초부터 시작하는 우기가 평년보다 일주일 정도 늦어질 것이라고 예보했다. 여기에 역대 두 번째 폭염이 겹친 것이다. 힌두스탄타임스에 따르면 인도 중부 마하라슈트라주의 인구 13만 소도시 비드는 수도가 말라버려 15~20일에 한 번씩 오는 '물탱크차'에 의존하고 있다. 사람들은 물을 아끼기 위해 빨래도 안 하고 수세식 화장실에도 가지 않는다. 마을 주민은 "용변을 보고 물을 내리면 10L가 낭비되는데 어떻게 화장실을 쓰느냐"고 입을 모은다. 모디 정부가 그토록 근절하고자 한 길거리 배변이 가뭄 때문에 다시 시작된 것이다.
지난해 인도 국립 싱크탱크 니티아요그가 발표한 '물 지수'를 보면 2020년까지 뉴델리·벵갈루루 등 인도 대도시 21곳에서 물 부족 사태가 발생해 약 1억명이 식수 부족을 겪을 것으로 분석했다. 또 식수 부족이 지속된다면 2030년까지 인구의 40%가 식수를 공급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도 정부가 지난해 발간한 상수도 관리 종합지수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20만명이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해 죽고 있다.
지난달 30일 새로 출범한 모디 2기 정부는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수자원부와 식수부를 통합해 수력(水力)부를 만들었다. 지난 선거 기간 여당 인도인민당은 "2024년까지 모든 가정에 식수를 공급해 국가의 물 문제를 종식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현지 언론들은 "물 절약을 강조하고 물 재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것 말고는 아직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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