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팀장

'목·팔·다리 등이 없는 몸체만의 조각 작품'을 토르소(torso)라고 한다. 중학교 미술실 구석에 놓여 있던 토르소를 처음 보았을 때 그 기괴함에 당혹스러웠지만, 누구도 토르소의 의미에 대해 가르쳐준 적도 없었고 묻지도 못했다. 그 시절에는 국·영·수 외 다른 분야는 공부라 여기지 않았기에 의문이 있어도 그저 혼자 해결하는 식이었다.

토르소에 대한 궁금증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와서야 풀렸다. "모든 조각은 움직임을 지향한다. 토르소에 팔, 다리의 형상을 붙여 보라. 그리고 어떤 얼굴이 어울릴까를 생각해 보라." 미술평론가 이경성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기괴하고 차가운 대리석 덩어리는 생명력 충만한 살아 있는 인체가 되었다. 움직이는 부분을 제거한 토르소야말로 움직임을 가장 잘 표현한 셈이다.

우리가 흔히 '동양화'라고 하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화권의 옛 그림에는 여백이라 불리는 빈 공간이 있다. 아무런 붓질이나 색채도 없는 공간이기에 그냥 텅 비어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여백은, 그림을 보는 이가 자신의 선과 색으로 비어 있는 또는 비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을 채워보라는 의미를 가진 능동적 공간이다. 동양화는 완성된 화면을 제시하기보다 완성을 지향하는 현재진행형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보는 이와 교감하는 그림이기 때문에 화면을 가득 채우면 보는 이가 끼어들 틈이 없게 된다. 그래서 줄이고 또 줄인다. 덜어내고 덜어내기에 역설적으로 더 큰 의미가 남는 것이 동양의 방식이고 동양의 그림 제작 원리다.

토르소와 여백은 예술 창작에서 절제와 생략의 중요성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예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정반대가 아닌가 싶다. 하나의 그릇도 더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반찬이 빼곡한 한정식에 잘 차려졌다며 만족해하고, 외국어에서 예능까지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만 우등생이라고 하지 않던가. 예술에서 그랬듯이 현실에서도 덜어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