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가 연구·집필 책임자 모르게 213군데나 수정된 데는 결국 교육부의 조직적·불법적 개입이 있었다는 점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교육부는 작년 3월 연구·집필 책임자인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가 "내가 모른 채 교과서가 수정됐다"고 폭로했을 때부터 최근까지 "출판사와 박 교수 사이 일로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는 교육부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교과서 내용을 고치기 위해 민원을 조작했고, 박 교수의 도장까지 도용한 점이 드러났다.

이 같은 '교과서 불법 수정' 사태에 대해 교육계에선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 집필에 개입했다고 공격하더니, 자신들은 뒤에선 더 심한 불법을 저질렀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우린 박근혜 정부랑 다르다. 국민 여론대로 한다'고 홍보했지만, 범죄 저지르고 자신들 입맛 따라 교과서를 고치는 게 국민 여론인지 황당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전 정권엔 "철저히 조사하라", 자신들 불법엔 "우리는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좌편향 역사 교육을 바로잡겠다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려 하자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아이들에게 획일적 (역사) 교육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반대했다. 그는 "역사 교과서 내용에 정권이 개입하면 결국 대통령 입맛에 맞는 교과서가 된다"고도 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직후 '적폐 청산 1호'로 '국정 역사 교과서 폐지'를 발표했다. 여당은 이후에도 국정감사 등에서 "전(前) 정부가 국정교과서에 유리하게 찬성 여론을 조작했다" "학교정책실장에게 (여론 조작) 지시 내린 청와대 관계자를 찾아내야 한다"고 공격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7년 1월 국회 교문위 소속 야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 역사 교과서를 즉각 폐기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결국 교육부는 2017년 9월 진상조사위를 꾸려 국정교과서 사태를 7개월간 조사한 뒤 청와대, 교육부 관계자 등 17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그때 김상곤 당시 교육부 장관은 "교육부 중심으로 국정화가 추진된 것이 명백한 사실"이라면서 "(국정교과서는) 국민 대다수의 뜻을 거르고, 민주주의 훼손한 권력의 횡포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집요하게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을 공격해온 현 정부·여당은 막상 자신들이 정권을 잡자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자신들 입맛에 따라 집요하게 초·중등 교과서를 고친 것이다. 교육부는 작년 3월 연구·집필 책임자 모르게 초등 교과서가 수정됐고, 책임자의 도장까지 도용됐다는 점을 확인했음에도 "출판사한테 물어보라. 우린 전혀 모른다"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김상곤 장관도 국회에 나와 "출판사와 발행 기관 간에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김 장관은 야당 의원들이 "출판사가 뭐 하러 도장까지 도용해 교과서를 수정하겠느냐"고 추궁해도 꿋꿋하게 버텼다.

심지어 교육부는 25일 검찰 조사에서 교육부의 조직적 개입으로 불법 수정된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교육부는 이날 설명 자료에서 "교과용도서 규정과 국정도서 위탁계약서에 따라 관련 절차를 진행했고, 발행사가 수정 발행 승인을 요청해 승인했다"고만 할 뿐, 민원 조작이나 도장 도용, 교육부가 수정을 요구해놓고 마치 집필자들이 자발적으로 고친 것처럼 서류를 작성한 점 등에 대해선 아무런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중·고 교과서 고칠 때도 "우리 뜻 아니라, 국민 뜻"

현 정부의 이런 이중성은 작년 5월 중·고교 역사 교과서 교육과정·집필 기준을 고칠 때도 드러났다. 집필 기준은 집필자들이 따라야 할 일종의 내용·표현 가이드라인이다. 교육부는 전 정부의 국정교과서를 폐기한 뒤 2020학년도부터 중·고생들이 배울 교과서를 새로 만들기로 하고, 집필 기준을 정권의 역사관에 맞게 대거 고쳤다. '대한민국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부분은 지웠고,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로 우회 서술했다. '북한 세습' '북한 도발' '북한 주민 인권' 등 북한에 대한 부정적 표현은 삭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