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국가에는 '무명용사의 묘'가 있다.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전사자 유해를 안치하고 국가적으로 추모 행사를 여는 공간이다.
영국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입구에 '무명용사의 묘비'를 설치해 가족이 거둬가지 않은 전사자를 기린다. 영국의 모든 대외 전쟁 전사자를 추모하는 성지로 꼽힌다. 현충일마다 영국 여왕과 여야 정치인, 참전용사, 유가족들이 이곳에서 대규모 추모 행사를 한다. 영국 왕실 구성원이 결혼을 할 경우, 신부가 받은 부케를 이 묘비에 바치는 게 영국 왕실 전통이다.
프랑스도 수도 파리(Paris)의 상징인 에투알 개선문 바닥에는 무명용사를 기리는 동판이 있고, 그 앞에서 '영원의 불꽃'이 타오른다. 바로 그 아래 지하 공간에 유족을 찾지 못한 무명용사가 안치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6·25 참전용사를 위해 헌화했던 장소다.
일본은 해외에서 돌아온 전사자 유해가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을 경우, 이를 화장해 도쿄 중심부에 있는 '전몰자 묘원'에 안치한다. 매년 5월 열리는 배례(拜禮)식에는 총리가 참석한다. 또 매년 가을 열리는 '추계 위령제'도 내각 대신(장관) 등이 참석하는 행사다.
중국에는 랴오닝성 선양의 '항미원조(抗美援朝) 열사능원'이 있다. 매년 4월 중국의 최대 명절인 청명절을 앞두고 한국과 북한 등에서 중국인 6·25 전사자 유해를 송환받아 이곳에 안장하고 추모한다.
한국도 2006년까지는 무명용사의 유해를 공동으로 화장, 현충원 내 안치하고 '무명용사의 탑'을 세웠다. 하지만 2007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출범한 이후 수습한 국군 전사자 유해 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9000여구는 임시유해보관소 '국선제'에서 10년 넘게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별도로 이들을 기리는 행사도 없다.
우리와 가장 비슷한 나라가 미국이다. 무명용사의 유해를 하와이 공군기지에서 냉장 보관 중이다. 미국 육군 규정은 "신원 확인 전인 유해 혹은 유해의 일부분은 크기, 숫자, 뼛조각의 질, 이전의 신원 확인 경향 등과 관계없이 절대 훼손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미국도 무명용사를 추모하는 국가적 상징 공간이 있다. 워싱턴 DC 알링턴 국립묘지 내 '무명용사의 묘'다.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이 전 세계에서 발굴한 신원 미상의 미군 전사자를 추모하는 장소다. 묘 아래에는 1~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한국전쟁 등 각 전쟁에서 수습된 무명용사의 유해가 각각 1구씩만 묻혀 있다. 워싱턴 DC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추모비는 위병들이 24시간 경호한다. 미국 전역에 있는 130여개 국립묘지 중 국방부가 유일하게 직접 관리하는 곳이 바로 이 알링턴 국립묘지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지금처럼 신원 확인 때까지 이들의 희생에 대한 추모를 무기한 연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적절한 추모 공간이나 행사를 마련해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용석 부경대 교수는 "신원이 확인될 수 있는 확률은 적은 편이고, 이들의 희생을 참배·기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노 교수는 "무명용사 유해의 DNA 샘플을 확보한 뒤 화장해 모신다면, 합사로 인해 신원 확인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는 "신원 확인을 끝까지 해나가는 것은 당연하고, 참전 용사의 유해가 많이 나오는 지역에는 작게라도 기념비를 세워 상시로 헌화하고 기릴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커다랗게 위령탑을 세우고 거창하게 기념식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일상 속에서 호국 영령들에게 감사하는 문화도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