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라 메종 코인트로' 결승전. 세계 최고의 바텐더를 뽑는 3대 대회 중 하나다. 야(夜)시장이라는 주제를 받자 한국 대표로 출전한 김도형(29)씨는 '전통 찻집'을 콘셉트로 잡고 한복을 입은 뒤 노래 '아리랑'을 틀었다. 코냑 '레미마틴 VSOP'를 베이스로 곶감 우려낸 즙, 계피, 생강 시럽, 비터스를 넣었다. 살짝 매우면서도 달콤한 맛. 수정과에서 영감을 받은 칵테일 '스테이 히어(Stay Here)'는 심사위원들로부터 "한국의 특성이 분명히 드러나면서 세계인들이 좋아할 맛이다"는 평가를 받으며 우승했다.
K팝, K푸드에 이어 이번엔 K칵테일이다. 2012년 페르노리카사(社)에서 주최한 국내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2016년 월드클래스 대회 국내 우승, 2018년 라 메종 코인트로 세계 대회를 연거푸 우승했다. 전 세계 바에서 초청 바텐딩을 하며 K칵테일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다. 올 한 해만도 프랑스·싱가포르·일본·홍콩 등 15개 국가 초청. 일본 오사카의 리츠칼튼호텔, 홍콩 샹그릴라 랍스터바 등이 무대였다. K칵테일의 매력은 무엇이고, 그의 칵테일은 어떻게 세계인을 사로잡았을까.
―K칵테일은 무엇인가.
"깻잎·곶감 등 한국적인 재료를 이용하거나 막걸리·소주 등 한국 술을 이용해 만든다. K팝 인기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외국인들이 'K칵테일은 어떨까'라는 호기심을 가지면서 바텐더들도 한국적인 칵테일을 많이 개발하고 있다. 속삭이듯 말하는 스피키지(speak-easy)바가 유행하는 등 한국 바 문화가 성숙한 것도 K칵테일 확산의 한 요인이다. 특색 있는 메뉴를 가진 바들도 많다. 영국 윌리엄 리드 비즈니스 미디어가 전문가들의 투표로 선정하는 '바(Bar)' 업계의 미슐랭 '아시아 베스트 바 50'에 최근 한국 바들이 포함됐다. 외국인들이 K칵테일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한국을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일하는 '앨리스 청담' '찰스 H' '르챔버' 등도 그 리스트에 포함됐다."
―어느 정도 인기인가.
"K칵테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한국 바텐더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하다. 싱가포르·홍콩 등이다. 국제 대회에서 한국 바텐더들이 입상하는 경우도 늘었다. 오연정 알로프트 서울 명동 바텐더도 지난해 프랑스에서 열린 레미마틴사(社) 주최 대회에서 한국인으로서는 20년 만에 우승하기도 했다. 구글이나 인스타그램에서도 'K칵테일'에 대한 기사나 레시피, 관련 글이 많이 올라왔다. 한번은 인스타그램에서 'K칵테일'로 메뉴를 구성해 놓은 바가 있었는데, 베네수엘라에 있더라."
―원래 칵테일에 관심이 많았나.
"술 자체를 싫어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술 많이 마시는 게 싫어서 난 거의 입에도 안 댔다. 친구들이랑 밥 먹을 때도 난 사이다를 마셨다. 그런데 차츰 마시다 보니 내가 아버지 닮아 주량이 세더라. 지금 주량은 소주 두 병이다."
―바텐더가 된 계기는.
"수능 치르고 충청도에 있는 4년제 대학을 갔다. 신소재공학과였는데 적성에 안 맞다 보니 '이건 아니다' 싶더라. 한 학기 다니고 자퇴를 했다. 부모님께서 그럼 자영업 기술이라도 배우라고 해서 바리스타를 하려고 '한국조리사관학교'를 들어갔다."
―커피를 좋아했나.
"그때까지 커피를 마신 적도 없었다. 당시 '커피프린스'란 드라마가 인기라 젊은 남자들이 하는 카페가 하고 싶었다. 그러다 교내 '바텐더' 동아리를 우연히 들어갔는데 칵테일을 만들려고 흔들 때 내는 소리가 꽤 매력적이더라. 그래서 전공을 바꿨다."
―바텐더에 대한 편견도 있는데 부모님의 반대는.
"내가 뭘 하든 반대는 안 하셨다. 늘 '믿는다'고만 하셨다. 물론 바텐더 한다고 할 때 '토킹바' 이런 곳 때문에 인식이 좋지 않아 걱정은 많이 하셨다. 첫 직장으로 'W호텔'에 입사하니까 아들이 호텔에서 일한다고 무척 좋아하셨다."
―학교 다닐 때 공부하란 말은 안 하셨나.
"안 하셨다. 누나는 전교 1등이었는데, 난 뒤에서 전교 8등이라 애초에 공부로 될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하셨던 거 같다. 학교 다닐 때 공부 빼고 다 해봤다. 운동도 많이 했고, 프로게이머 되겠다고 매일 스타크래프트를 하기도 했다. 친구 따라 연극부 활동도 했다."
―다른 경험들이 도움이 됐을까.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들이 다 도움이 되더라. 부모님이 20년 넘게 횟집을 하셨다. 덕분인지 미각이 예민한 편이다. 똑같이 마셔도 잔에 잡내가 나거나 술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발견한다. 전 세계 바텐더들을 대상으로 한 주류 블라인드 대회에서도 우승한 적이 있다. 맛에 대한 집착도 있다. 내가 만든 칵테일이 내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만든다. 한번은 대회 연습한다고 일하는 바에 있는 럼 10병을 다 썼다. '잘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우승해서 살았다(웃음). 연극부 경험도 대회에서 잘 쓰고 있다. 2016년 국내 최대 규모 바텐더대회 '디아지오 월드클래스 2016'에서 최연소로 우승했었을 땐 금주법에서 영감을 받아 찰리 채플린 분장을 하고 술을 지팡이에 숨기는 식의 연출을 했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인터넷으로 관련 기사, 음식, 국가, 그림 등을 찾아본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또 생각 날 때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록해놓는다. 그렇게 구상이 끝나면 재료를 가지고 연습한다. 유명한 바 탐방은 별로 안 한다. 재료를 가지고 내 입에 가장 맛있을 때까지 만든다."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첫 대회 나갔을 때. 경력 2년 차에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대회에 한국 대표로 나가게 됐다. 60개국 대표들이 참가하는데, 난생처음 미국행이었다. 너무 버거웠다. W호텔 언덕길을 매일 울면서 걸어갔다. 우울증도 왔다. 당시 할머니가 병상에 계셨는데 '내가 대회 끝나고 나서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그전에 돌아가시면 연습할 시간이 줄어드니까. 그런데 대회 전에 돌아가셨다. 마지막 절을 하는데 할머니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펑펑 나더라. '내가 장손인데, 인간인데, 이런 생각을 했다니'. 대회에서도 초반에 탈락했다."
―탈락 이유를 자체 평가해본다면.
"영어다. 내가 구현한 바를 심사위원들에게 잘 설명하는 게 힘들었다. 한번은 대회 주제가 한 시간 동안 초콜릿 만드는 수업을 듣고 초콜릿을 만들어 거기에 맞는 칵테일을 만드는 거였는데 설명을 이해하기 힘들더라. 지금도 바텐더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영어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한다. 술 공부야 오래 일하면 몸에 밸 수 있는데 언어는 그런 게 아니니까."
―칵테일을 만들 때 원칙은?
"청결. 칵테일은 예민한 술이다. 비율, 맛 상태, 셰이킹 등으로 달라진다. 지저분하게 만드는 친구들 보면 '너 이거 부모님 드릴 수 있어?'라며 크게 혼낸다."
―바텐더 일을 하며 어떤 걸 느꼈나.
"내가 한 만큼 돌려받는 것 같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어릴 때부터 했던 것들이 다 조금씩 지금 일에 도움이 된다. 아주 가끔 노력이 배신하는 걸 느끼긴 했지만, 그 배신이 다시 노력의 바탕이 돼 좋은 결과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