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청와대 첫 경제보좌관을 지낸 김현철〈사진〉 서울대 일본경제연구소장이 8일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와 관련, "정부가 일본 문제로 기업들과 공개적으로 만날수록 기업들의 활동 공간은 줄 것"이라며 "정부가 기업들을 정치·외교 '전선(戰線)'에 내세우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일본 나고야상과대, 쓰쿠바대 부교수로 재직했고,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위원을 지낸 현 정부의 대표적 '일본통'으로 통한다. 그는 "정부가 기업들을 만나 어려움을 듣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면서도 "다만 그 만남이 장기적으로 계속될 경우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아베 총리가 주도하고 있는 일본의 경제 보복은 여태 한·일 관계에서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며 "아베 정부는 (일본) 기업들을 눌러 한국과 협상에 응하지 말게 하면서 '정경분리의 원칙'을 파괴하고 있다"고 했다. 김 소장은 "한국은 일본과는 다른 전략으로 가야 한다. 정경분리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며 "(정부가 계속 기업을 만나면서) 정경이 연계되는 방향으로 갈 경우 오히려 기업들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가 시작되고 추가 보복으로 확산될 움직임을 보이자 뒤늦게 기업들과 간담회를 갖고 대책 협의에 나서고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 7일 삼성·현대차·SK 등의 총수·CEO를 만난 데 이어 오는 10일엔 문재인 대통령이 30대 그룹 총수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김 소장은 또 "대외적으로 정부가 기업들과 '공동 대응'을 모색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경우 기업들의 활로(活路)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강경한 목소리는 정부가 내면서 기업은 철저히 분리시켜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는 일본 보복 조치의 대책 중 하나로 '반도체 소재 국산화 방침'을 내놨지만, 김 소장은 이에 대해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며 "궁극적인 해법은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