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 부추기는 '주도자'들
SNS·메신저로 동참자 모집·정보 공유
단속 피하려 '메신저 떴다방'도 등장
전문가 "주도자 1명 잡아야 모두 살릴 수 있어"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강남의 한 원룸에서 성인 남녀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나이, 출신지 모두 제각각으로 서로 일면식이 없는 사이였다. 현장에선 "생존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가 나왔다. 이들은 소셜미디어(SNS)에서 만난 A씨를 따라 A씨의 월세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소셜미디어를 연결고리로 한 동반 자살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극단적 선택을 함께 시도하는 사람들이 경찰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 비공개 소셜미디어나 모바일 메신저 채팅방을 이른바 ‘떴다방' 식으로 운영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관련 정보를 올린 뒤 2~3초 만에 지우거나 아예 대화방을 폐쇄해 버리기도 해 당국이 단속과 예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자살 주도자’ 한 명이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여러 명을 부추겨 행동에 옮기게 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러스트=정다운

단속 나서면 이미 '방폭파' '삭제된 메시지'...골든타임 번번이 놓친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최근 제보받은 한 오픈채팅방(불특정 다수와 익명으로 대화하는 공개 단체채팅방)에선 "힘들다" "끝내고 싶다"라는 메시지가 수시로 올라왔다. 메시지를 본 '주도자들'은 "나도 너무 힘들다.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다"며 '공감 답장'을 보내 감정을 증폭시켰다. 이후 "진짜 생각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XXX를 사용하면 고통이 없다고 한다"며 극단적 선택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또 다른 채팅방에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아이디나 전화번호를 공개하고 "같이 할 생각 있으면 연락 달라"고 말한 뒤, 2~3초 후 대화 내용을 모두 삭제했다. 일부 단체방은 관련 정보를 제공한 뒤, 대화방을 아예 폐쇄하기도 했다. 모두 단속이나 신고를 피하기 위해서다.

이른바 ‘떴다방’ 방식으로 극단적 선택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들. 이 카톡방에서 ‘주도자’는 자신의 메신저 아이디를 공개한 직후 대화 내용을 삭제했다.

경찰 관계자는 "일반 인터넷 커뮤니티나 포털사이트와 달리, 비공개 소셜미디어나 메신저에선 증거를 찾기 어렵고, 위치를 찾아 들어갔을 때는 이미 글이 지워지거나 채팅방이 폐쇄된 경우가 많다"며 "주도자 검거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소셜미디어 그룹이나 채팅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최고의 단서"라고 했다.

소셜미디어나 메신저 서비스 업체의 키워드 필터링(걸러내기)을 피하기 위해 자살 방법, 도구, 시점을 암시하는 ‘은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목격됐다. 카카오 관계자는 "관련 금칙어를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채팅방 이름과 닉네임에 (금칙어를) 사용할 수 없도록 막고 300여 명을 동원해 오픈채팅방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도 "대화기록이 서버에 저장되는 기간이 이틀에 불과해 ‘삭제된 메시지’의 경우 사후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엔 ‘자살 주도자’ 한 명이 이끄는 대로 여러 명이 극단적 선택에 동참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주도자가 극단적 선택을 함께할 동참자를 소셜디미어나 메신저를 통해 모집한 뒤 △장소 △도구 △방법 등 정보를 공유하는 식이다. 전홍진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은 "극단적 선택을 할 생각이 없었던 사람도 주도자의 부추김에 ‘동참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악마의 속삭임' 주도자 신속히 검거해야… 고위험군 체계적 관리 필요"
전문가들은 효과적인 단속과 예방을 위해서는 극단적 선택을 유발하는 정보를 제공하거나 부추기는 주도자를 신속하게 검거하거나 정보망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주도자 한 명을 붙잡으면 다수의 동참자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임영진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살 위험이 낮은 저(低)위험군도 고위험군의 영향을 받으면 동조 효과로 행동을 결의할 수 있다"며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관련 정보를 차단하고, 이를 작성하거나 유포하는 주도자를 잡아내는 것이 예방에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유규진 SNS자살예방감시단장은 "동반자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악마의 속삭임’과 같다"며 "이를 주도하는 인물에 대한 사전 검거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제공

자살 고위험군을 분류하고,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치료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원인은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사회적·개인적 고독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며 "국가가 나서 자살 고위험군을 모니터링하고, 사회복지사 등이 지속적으로 찾아가면서 관리하면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경찰은 지난 16일부터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이 시행됨에 따라 오는 10월까지 특별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자살동반자를 모집하거나 자살 관련 정보를 작성 및 공유하는 행위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자살예방법에 따라 인터넷 포털, 게임 등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는 경찰과 소방당국이 요청할 경우 긴급구조대상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위치정보 등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이를 거부할 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소셜미디어 등에서 극단적 선택 관련 정보를 유통하는 정황이 발견될 경우, 적극적으로 게시물을 올린 주도자에 대해 내·수사를 빠르게 진행할 방침"이라며 "동시에 정보망 차단을 위해 해당 게시물을 방송심의위원회 등에 요청해 신속히 삭제·차단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