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규 텔레칩스 사장은 “연구개발(R&D)은 텔레칩스가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이라며 “직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장 비결이요? 2008년 휴대전화용 반도체(칩) 사업을 접은 것입니다."

지난 10일 만난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 1세대 경영인 이장규 텔레칩스 사장은 회사 성장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 사장은 휴대전화 사업은 접었지만, 대신 자동차용 칩 개발에 주력하며 현재의 텔레칩스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텔레칩스는 자동차용 오디오·디스플레이 칩을 개발하는 회사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물론 BMW, 폴크스바겐, 도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에 카오디오 칩을 공급하고 있다. 현대차가 제조하는 자동차 내부에 탑재되는 오디오 칩 중 85%가량이 텔레칩스 제품이다. 지난해 매출은 1260억원을 기록했다.

◇"위기는 곧 기회"…휴대전화 사업 접고 카오디오 칩 강화

이 사장은 삼성반도체 연구원 출신으로 1999년 텔레칩스를 창업했다. MP3가 워크맨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했고 MP3용 칩을 개발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텔레칩스는 승승장구했다. 이후 휴대전화, 자동차용 칩 등 2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성과는 휴대전화 칩에서 먼저 나왔다. 휴대전화의 음악 기능이 강화되면서 텔레칩스의 칩 수요가 증가했다. 삼성·LG 등 국내 전자 대기업이 텔레칩스의 주 거래처였다.

하지만 2007년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회사가 위기에 빠졌다. 휴대전화 시장이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변화하면서 텔레칩스 주력 사업인 MP3는 물론 피처폰 시장이 한순간 사라진 것이다. 이 사장은 "최대 위기이자 기회였다"며 "휴대전화 칩을 접고, 그동안 쌓은 오디오 칩 응용 기술을 바탕으로 자동차용 칩 사업을 강화해 나갔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과거 휴대전화용 칩 사업과는 달리 일본 시장을 먼저 공략했다. 일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후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텔레칩스는 자동차 오디오에 USB를 연결하면 합법적으로 내려받은 음악만 재생할 수 있는 칩을 개발했다. 일본 전자업체 JVC가 이 칩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공급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이후 현대차에도 같은 칩을 공급했다. 2009년 자동차용 오디오 칩을 개발했을 때도 일본 시장에 먼저 선보인 후 국내 시장에 들어갔다. 텔레칩스는 2013년부터 현대차에 오디오 칩 등을 공급하고 있다. 현재 텔레칩스의 매출 중 10%는 일본 시장에서 발생한다.

이 사장은 텔레칩스가 변신할 수 있었던 비결로 연구개발(R&D)을 꼽았다. 이 사장은 MP3, 휴대전화용 칩은 물론 현재 주력 사업인 자동차용 오디오 칩 개발을 주도했다. 그는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이자 엔지니어로 통한다. 텔레칩스 직원 290여명 중 연구 인력이 75%에 달하는 것도 R&D를 강조하는 이 사장의 경영 철학 덕분이다. 지난해에는 매출의 24%(303억원)를 R&D에 투자했다. 최근 직원들의 창의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하루 8시간을 일하고 싶을 때 자유롭게 일하는 ‘자율 출근제’도 시작했다.

이 사장은 "R&D는 텔레칩스가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이라며 "직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텔레칩스는 자동차 내부에 탑재되는 오디오·디스플레이·카메라 등 전자기기를 하나의 칩으로 통합·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내년 새로운 성장 계획…차량용 전자기기 통합·관리 칩 개발

텔레칩스는 내년 또 다른 성장을 준비 중이다. 자동차 내부에 탑재되는 오디오·디스플레이·카메라 등에 각각 칩이 들어가는데, 이를 하나의 칩으로 통합·컨트롤하는 칩과 시스템을 개발했고 올해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 사장은 "자율자동차 시대에는 디스플레이, 카메라 등 차량 내 전자기기가 더 늘어날 것"이라며 "각 기기에 칩이 들어가는 것보다 하나의 칩이 통합해 관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가격도 저렴하다"고 말했다.

해외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회사 매출의 35%가량이 해외에서 발생한다. 이 사장은 해외 매출 비중을 50%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미국·유럽·중국·일본·싱가포르 등에 지사를 설립했다.

"해외 완성차업체에 공급하는 칩은 자동차를 제조할 때 기본 장착되는 것보다 현지 시장에서 딜러 옵션으로 들어가는 게 더 많습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기본 장착 물량을 더 늘려야 해요. 중국 물량이 회사 전체 매출의 10%가량을 차지하는데 올해 중국 비중이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