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세종도로 중앙선 '유도등', 스프링클러로 변신
도로 청소에 폭염 완화까지…"주변 온도 3~4도 낮아져"
서울, 12년 전 "세차비 달라" 민원에 중단… 37도 폭염에 부활

"차선 한가운데가 젖어있길래, ‘왜 저기만 비가 왔지’ 싶었어요."

한낮 최고 기온이 37도까지 치솟은 5일 오전 11시.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 왕복 10차선 도로 한복판이 물에 젖기 시작했다. 물을 뿌리는 소방차나 살수차는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도로 중앙선에 설치된 작은 사각형 모양의 ‘유도등’에서 물이 분사됐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기 전, 도로 위 아스팔트는 물을 흠뻑 머금었다.

5일 오전 11시 서울시 세종대로 중앙차선에 설치된 유도등에서 물이 분사되고 있는 모습(위)과 분사 후 전 차선이 흠뻑 젖어있는 모습(아래).

세종대로 서울도시건축 전시관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회사원 차모(33)씨는 "매일 이 시간대 여기를 지나가는데, 얼마 전부터 유도등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신기했다"며 "중앙선 유도등에 이런 기능이 있는지 처음 알게 됐고, 덕분에 공기가 훨씬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중앙차선에서 물을 분사하는 유도등은 2007년 도로 청소 목적으로 서울시가 광화문 세종대로 340m구간에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이전에는 물탱크를 차량에 싣고 도로에 뿌렸으나, 유도등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자동으로 노면을 청소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이 적용된 길은 청소한다는 뜻의 ‘클린 로드(Clean Road)’라고 불린다.

도로 청소용이던 스프링클러가 폭염 대비용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사실 서울시는 2007년에도 여름 한낮에 클린 로드를 가동하려 했다. 도로 중앙에 분사되는 물이 폭염으로 뜨거워진 도로 열기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엔 시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엔 차량 통행이 적은 새벽 시간에만 틀던 클린 로드를 낮에 틀자 ‘차에 물이 튀니 세차비를 달라’는 민원이 잦아, 며칠 만에 여름 한낮 운영을 중단했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도입 12년 만인 올해, 클린 로드 여름 한낮 가동을 재개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22일부터 하루 한 번 분사하던 스프링클러 작동을 세 번으로 늘려 운영하고 있다. 오는 9월 15일까지 오전 4시, 오전 11시, 오후 2시에 5분동안 가동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22일 추가 가동 이후 아직 관련 민원은 없다"며 "폭염에 대응해야 한다는 시민들 공감대가 커진 것 같다"고 했다.

클린 로드는 실제 노면 온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오은경 대구시 기후대기과 주무관은 "여름에는 한낮 아스팔트 온도가 60도까지 치솟는데, 스프링클러를 약 7분 분사하면 아스팔트 온도가 20도까지 내려가고, 주변 대기 온도는 3~4도 내려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했다. 2008년 경북 포항시도 북구 중앙로 일대에, 2010년엔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로 불리는 폭염의 상징 대구시도 대구 지하철 1~2호선 주변 등에 클린 로드를 도입했다. 두 도시는 도입 당시부터 클린 로드를 폭염 시기에 도로 주변 온도를 낮추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최고 기온이 37도까지 올랐던 5일 오전 11시 서울시 세종대로. 중앙차선에 설치된 유도등에서 물이 분사되는 와중에 차들이 지나가는 모습.

도로 청소와 폭염 대응이 가능한 클린 로드지만, 설치 조건이 까다롭다. 클린 로드는 한 번 틀 때마다 1분당 평균 3.5톤(t)의 물을 사용한다. 지속적으로 물을 공급할 용수원이 클린 로드 주변에 있어야 한다. 서울과 대구는 인근 지하철 역사 집수장에 모인 지하수를, 포항은 형산강물을 이용하고 있다. 서울시 도로교통과 관계자는 "땅을 팠을 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물을 담아둔 곳이 지하철 역사 집수장"이라며 "시설 비용 등을 절약하기 위해 집수장에 모인 물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철이 들어서지 않은 포항의 경우 강물을 끌어다 쓰고 있다.

서울시는 폭염 대응책으로 도로 위 스프링클러를 늘려갈 계획이다. 김학진 서울시 안전총괄실장은 "도로 청소는 물론 폭염에 의한 도심 ‘열섬 현상’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봐 향후 설치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열섬은 도시 내 빌딩,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 축적된 태양 복사열이 밤사이 배출되는 현상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