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찍은 트럼프 형제 사진. 오른쪽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왼쪽이 형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이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차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어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73)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내 실수다" "후회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유일하게 그런 대상이 있다. 38년 전 죽은 형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다. 워싱턴포스트(WP)는 8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이같이 전례 없는 표현을 썼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여덟 살 위인 프레드 주니어는 알코올중독으로 1981년 43세로 사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술이나 담배를 멀리하는 것은 형 때문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트럼프는 WP 전화 인터뷰에서 1960년대 중반 프레드가 부동산 사업 등 가업을 이어받기를 꺼리고 비행기 조종사가 될 준비를 하자 "허접한 일에 시간낭비 말라"고 했다면서 "형을 그렇게 몰아붙인 것을 후회한다(regret)"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 프레드 시니어와 차남인 자신이 장남을 함께 공격했다면서 "형은 사업 체질이 아니었는데 누구나 사업을 좋아한다고 여긴 게 우리의 가장 큰 실수(mistake)였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10대까지만 해도 비행기 옆에 선 형의 사진을 학교 기숙사에 걸어둘 정도로 선망했다. 그러나 20대 들어선 점점 아버지의 기대에서 멀어지는 야심 없는 형에게 "정신 차려라"고 삿대질하며 싸웠다고 친지들은 전한다. 트럼프는 프레드가 가업 승계를 최종 포기한 뒤 '트럼프 제국'을 물려받았지만, 이때 죽어간 형 때문에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 이후엔 '전형적인 트럼프'로 돌아온다. 트럼프는 1999년 부친 사망 이후, 프레드의 아들에겐 재산을 거의 물려주지 않았다. 조카가 "할아버지 유언 조작하지 말고 내 몫을 달라"며 소송하자, 뇌질환을 앓는 조카의 아들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끊어버렸다.

그는 WP에 "형은 배우 뺨치게 잘생겼었다. 그 잘생긴 모습이 망가져가던 기억에 아직도 몸서리친다"면서 "나도 술을 입에 댔다면 이런 인터뷰도 못했을(죽었을) 것이다. 집안에 유전적인 게 있다"고도 했다. 이렇게 형에 대한 추억에 젖어, '가짜 뉴스'라고 맹비난해온 WP의 기자와 긴 전화 인터뷰를 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차별 언사로 증오와 분열을 획책했다고 비난받는 상황에서, 가족사에 회한을 드러낸 인터뷰를 자청한 것을 두고 '여론 무마용'이란 말도 나온다. 기사엔 "'히틀러가 어머니를 사랑했다'는 것과 같은 수준 이야기" "트럼프가 형과의 관계에서 뭘 배웠다는 것인가"라는 독자의 날 선 반응이 쏟아졌다. 앞서 백악관은 텍사스·오하이오 총기 참사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홀로 집무실 창 밖을 내다보는 뒷모습 사진에 '국가를 위한 진지한 고민'이란 제목을 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