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방송국 첫 출근을 앞둔 밤, 사회 초년생인 필자는 걱정이 많았다. '방송 일이 엄청 고되다는데…' '선배들 텃세가 장난 아니라는데…'. 하지만 첫 출근 날 필자를 기다린 것은 산더미 같은 일도, 까칠한 선배도 아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분명 우리말로 이야기하는데도 알아듣지 못하는, 일명 '먹통' 현상이었다.
PD 왈(曰) "'시바이'를 더 넣어서 '오도시'를 줘요." 선배 작가 왈(曰) "그럼 '데모치'로 해요, '니주' 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일본말 같긴 한데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나중에야 다른 사람의 '통역' 덕분에 "'상황 설정'을 더 넣어서 '반전'을 만들어 줘요" "그럼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찍어요. '복선' 깐 거 살게"라는 말이란 걸 알았다. 이 말들을 못 알아들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으니, 일보다는 말을 먼저 배워야 했던 시간은 그 후로도 한참 더 이어졌다.
그런데 제작 현장의 일본어를 익히고 나니, 다른 위기가 닥쳤다. 몇 년 뒤 보도국으로 자리를 옮기며 이번엔 취재 현장 일본어를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사쓰마와리(경찰 출입 기자)한테 전화해 봐라" "미다시(표제어, 영어로는 '헤드라인') 뽑았냐?" "이 기사들 우라까이(모아서 변형하다) 해 와라" 등 눈치껏 알아채야 하는 '신상' 일본어가 융단 폭격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말을 좀 써야 전문적인 듯 착각했고, 또 의사소통도 훨씬 수월하니 죄책감 없이 썼던 것 같다. 지금도 방송계 내부에서 꾸준히 자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지만, 아직도 첫 작품을 연출한 PD에게 "입봉 축하한다"거나, 기자에게 "야마(요점)가 뭐냐?" "그림 간지(느낌) 나냐?"고 묻는 것이 자연스러울 만큼 일본어는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 '온 국민이 애국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자는 운동이 한창이다. 며칠 전 광복절을 보내며 이런 결심은 더욱 견고해진 느낌이다. 방송 제작진도 긴 시간 동안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방송 현장 일본어를 이 기회에 털어내 보자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