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까지 서울 지하철 1~8호선 승강장의 매점과 자판기 627개를 전부 철거키로 한 '승강장 비움 사업'을 서울교통공사가 철회한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신문·과자·음료 등을 파는 매점 151곳과 음료·스낵 자판기 476개를 전부 없애 통행 공간을 넓히겠다고 2017년 2월 발표했는데, 당초 계획을 백지화하고 20% 수준인 127곳의 매점과 자판기만 없애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키로 했다. 지하철 승객 통행권을 보장한다고 전면 철거라는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취약 계층인 매점 운영자들 생존권 논란이 불거지자 1년여 만에 슬그머니 번복한 것이다.
◇"통행 방해" 매점 전부 없애기로 결정
지하철 승강장 매점·자판기 철거는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서울시의회 한 의원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2016년 12월 서울시의회 정례 회의에서 당시 우창윤 시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지하철 승강장에 매점이나 자판기 등 각종 시설물이 놓여 있으면 승객들이 이동하는 데 불편을 끼치고, 비상시 대피하는 데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는데, 승강장에서 매점 등 시설 때문에 길이 좁아져 통행에 불편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그러자 서울교통공사는 덜컥 지하철 승강장 매점과 자판기 전면 철거 방안을 발표했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재계약을 하지 않고 철거했다. 2017년 21곳, 2018년 25곳이 사라졌다.
하지만 매점 운영자 대부분이 생활이 어려운 고령자이거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라 생존권 논란이 불거졌다. 승강장 매점은 사회적 배려 차원에서 법으로 장애인, 65세 이상 노인, 한 부모 가족, 독립 유공자 가족 등 취약 계층에 우선 임대해주는 시설이기 때문이다.
◇"철거 취소라니 다행"
지난 22일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승강장 한 매점 앞에는 안경·모자·벨트 등이 진열돼 있었지만 손님은 거의 없었다. 매점을 운영하는 최모(70)씨는 "장사가 잘 안 돼서 이것저것 팔아 보려고 내놓았는데 시원찮다"고 했다. 최씨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을 아침 7시부터 밤 10시 30분까지 매점을 연다. 그런데도 하루 2만~5만원 정도 팔아 수중에 1만원 정도 남으면 재수 좋은 날이라고 했다.
저녁 7시쯤 퇴근길 직장인들로 붐비는 지하철 2호선 영등포구청역의 한 매점은 한 시간 넘도록 손님이 한 명뿐이었다. 이곳을 운영하는 김모(82)씨는 "요즘은 편의점이 워낙 잘돼 있어서 이런 데서 물건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두 노인의 매점은 다음 달 서울교통공사와 임대 계약이 만료되면 철거될 처지였다. 시청역 매점의 최씨는 "장사는 잘 안돼도 그래도 이것밖에 할 일이 없었는데 철거가 취소됐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