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미국의 방어선은 알류샨 열도에서 일본을 지나 류큐(오키나와)를 거쳐 필리핀으로 그어진다."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1950년 1월 12일 백악관 인근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연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스탈린·마오쩌둥의 공산화 야욕에 맞선 미국의 필수 방어 지역에서 한국·대만을 뺀 것이다. 애치슨은 방어선 밖의 안보에 대해서는 "공격을 받으면 최초 책임은 그 국민에게 있다. 그다음은 유엔 헌장에 의거해 전 문명 세계의 책임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애치슨라인'을 가쓰라-태프트 밀약, 한반도 분할과 함께 '미국의 3대 배신'으로 일컫는 사람들도 있다.

▶2차 대전 후 미국은 핵무기와 막강한 공군력을 믿고 재래식 군사력을 대폭 감축하기로 했다. 병력 재배치를 위해 국방부가 각 지역의 전략적 가치를 평가했는데 한국은 대상 국가 16곳 중 13위였다. 한국이 방어선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다. 그렇다고 미국이 애치슨라인 밖 지역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실제로 미국은 애치슨 연설 2주 후 한국에 대한 방위 원조를 명문화한 조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애치슨라인 발표 후 불과 5개월 만에 6·25 남침이 터지면서 애치슨은 수십 년간 "북한의 남침에 '청신호'를 준 장본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김일성이 '미군 불개입'을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미 야당 의원들은 물론 6·25전쟁 영웅 리지웨이 사령관도 애치슨에게 책임을 물었다. 1952년 대선 유세 때는 아이젠하워가 애치슨을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이후 발굴된 소련 문건 등을 통해 김일성은 애치슨라인이 그어지기 한참 전부터 남침을 결정했음이 드러났다. 애초 이 방어선을 애치슨이 처음 구상한 것도 아니다. 한국 근현대사 석학인 매트레이 교수에 따르면 맥아더 사령관은 1949년 한국에 머물던 미군을 일본으로 재배치하기 위해 애치슨라인과 똑같은 선을 이미 그었다고 한다. 애치슨도 훗날 회고록에서 '한국 포기설'을 강하게 부인하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애치슨라인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 전략적 대실수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새로운 애치슨라인을 긋고 있다. 국제 정치적 전략 검토는 물론 없다. 부동산 업자의 감각 같다.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로 스스로 이 '트럼프 라인' 밖으로 한 발을 내밀었다는 우려가 많다. 미국은 문재인 정부 때문에 주한 미군이 위험해졌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외롭고 춥고 위험한 '라인 밖' 운명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