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지나도 배우 안성기씨는 좀처럼 잊히지 않아요. 얼마나 인성이 푸근하고 점잖던지, 아! 화면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더라고요." 관광지에서 별 두 개짜리 호텔 주인장을 하다 보면 그야말로 별의별 사람들을 응대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프랑스 파리 북부의 몽마르트르 언덕배기 호텔이라면?
문인이자 호텔리어인 신근수(73)씨는 27년간 자신이 운영하던 '물랭호텔'의 사연을 책으로 펴냈다. '몽마르트르 물랭호텔1'(지식과감성)엔 작년 1월 호텔문을 닫기까지 이곳을 거쳐 간 5만명의 손님과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문학청년이었다. 고려대 불문과를 택한 것도, 학보사에 들어간 것도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프랑스 작가들이 노벨 문학상을 휩쓸던 때였다. "졸업 후 신문사 기자를 하며 프랑스 유학을 준비했다"고 했다. 하지만 글쓰기나 마찬가지로 삶도 계획대로 되지만은 않는 법. 건설 회사에 입사해 1976년 파리에 주재원으로 발을 디뎠다. 이때 쓴 '우물 안 개구리'는 이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에 당선됐다. "회사가 갑자기 폭삭 망해 파리에서 4년 동안 한식당을 운영했죠."
'여유 있는 직업 택해 글 쓰다 손에 쥐나 나 보자'는 심정으로 1989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에 관광호텔을 열었다. 나중에 영화 '아멜리에'를 촬영한 카페와 30m 떨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새벽까지 자리 지키긴 예사요, 소매치기당한 손님 따라 경찰서를 들락거려야 했다.
"많은 손님 중에서 청와대 특별보좌관과 주미 대사를 지낸 김경원씨가 기억에 남아요." 1990년대 중반 '호텔 수준에 맞지 않는 귀빈'이란 생각에 바짝 긴장했지만 '곰탕에 김치 식사가 좋다'며 보인 검소하고 정중한 모습에 감동받았다. "겸양이 몸에 밴 분이었죠.'갑질 손님'을 만나면 늘 그분이 그립더군요."
연극연출가 손진책씨, 아내인 배우 김성녀씨와의 인연도 있다. 개업 소식을 들은 손씨는 1년에 한 번 연극제 참석을 위해 유럽에 갈 때마다 물랭호텔을 찾았다. 신씨는 "그의 손에 이끌려 반강제적으로 연극을 보러 다녔다"고 했다. 공연 중엔 휴대전화를 꺼야 했기 때문에 호텔 주인으로선 아찔한 일이었다.
'아침이슬'의 가수 김민기와는 달 밝은 날 호텔에서 대작하다가 "밤에 작은 배를 타고 나가 술을 마셨는데, 달빛이 창창한 바다를 보자니 얼음장이 깔린 것 같아 그 위를 걷고 싶었다"는 시(詩) 같은 회고를 들었다. 어른들 앞에서 호탕한 웃음을 짓던 열두 살 첼리스트 장한나는 매운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해서 돼지고기·오징어 볶음을 구해 줬다는 얘기도 있다.
영화 촬영 중 잠시 호텔에 들러 쉬던 할머니가 알고 보니 왕년의 대배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였는가 하면, 호텔 건물을 통째로 '징발'해 촬영한 영화의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
그의 회상에는 '글 쓰는 손님'이 많이 나온다. 투숙한 소설가 이호철씨는 '당신 원고를 한번 보여 달라'고 했다. "몇 시간 뒤 빨간 볼펜으로 고친 흔적이 가득 담긴 원고가 돌아왔어요. 고개가 푹 숙여졌죠." 시인 조병화씨는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모습을 봤는데 섬세한 작품과는 달리 우람한 체구여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술이 셌던 소설가 이문열씨는 새벽까지 호텔 마당에서 함께 포도주를 마시다 "이 일 접으시고 글을 쓰시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신씨는 호텔을 스쳐간 이들을 뒤로하고 런던에서 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아직 글쟁이를 꿈꾸는 제게 호텔의 추억은 무엇보다 값진 소재지요. 앞으로 손님들 이야기를 책 여섯 권 분량으로 더 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