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미국 하버드대 연구실에서 만난 케빈 파커 교수는 질문을 던기지도 전부터 "미국에서 지출되는 의료 비용 1달러당 26~27센트 정도는 뇌 질환이나 정신 질환에 투입되는 비용"이라며 '뇌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했다. 파커 교수는 '뇌 칩(Brain-on-a-chip)'을 만들어 뇌 관련 질환에 대해서 연구를 한다. 파커 교수의 연구실 안에는 2~3개 정도의 뇌 모형이 있었다.
파커 교수는 "미국도 고령화 때문에 치매 등 뇌 관련 질환으로 인한 보건 비용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군인으로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복무했던 파커 교수는 전장에서 폭발로 인한 충격 때문에 뇌에 문제가 생긴 군인들을 돕기 위한 연구도 하고 싶다고 했다.
-뇌칩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뇌칩은 플라스틱 칩 위에 액상 실리콘 등을 만들어서 작은 틀을 만들고, 동물 뇌의 각 부분에서 떼어낸 세포들을 배양해 뇌의 구조를 몸 밖에서 재현한 장치를 말한다. 양이나 원숭이 뇌로도 만들 수 있지만 보통 쥐의 뇌로 만든다. 3주 정도면 각각의 뇌 부위가 뉴런으로 연결돼 특정 물질에 대해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할 수 있다. 최근에는 뇌 칩을 활용해서 마약(메스암페타민)에 중독된 사람의 뇌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관찰한 바 있다. (메스암페타민 중독자의 경우 뇌의 '혈액 뇌 장벽(Blood brain barrier·외부 화학물질로부터 뇌 안쪽을 보호하는 물리적 장벽)을 느슨하게 만들어서 외부 물질이 쉽게 뇌 속으로 침범하게 만든다.)"
-뇌 오가노이드 등 다른 '인조 뇌' 대비 뇌칩의 장점이 무엇인가.
"정교한 연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뇌 오가노이드의 경우 매번 만들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져서 약물에 대한 효과 등을 정교하게 살피기가 어렵다. 예를 들자면 오가노이드를 아몬드 초콜릿에 비유하자면 어떤 초콜릿엔 아몬드가 들어있고, 어떤 초콜릿엔 아몬드가 빠져 있는 등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자연적으로 생기는 오가노이드가 아니라 젤 등에 줄기세포를 섞어서 배치한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등 보다 정교한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어떤 연구를 하고 싶나.
"앞으로는 사람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뇌칩을 만들어서 '알츠하이머 뇌칩' '조현병 환자 뇌칩' 등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는 동물의 뇌 세포로는 사람의 뇌에 있는 질병을 재현한 뇌칩을 만들 수 없다.) 제약사에 이러한 뇌칩을 공급하면 치료약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뇌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공기 오염이 임신부의 배 속에 있는 태아에 미치는 영향 등도 여러 장기를 재현한 칩을 통해서 연구하고 있다."
-치매 연구의 중요성은.
"단순히 치료약을 만드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 사람들이 노년에도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정신 질환 치료도 가능할까.
"감정이나 인지에 대한 연구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사람들이 행복해하거나, 분노할 때 뇌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연구를 해보고 싶다. 또한 어떻게 뇌가 '3+3=6'은 맞고, '3+3=7'은 틀리다는 판단을 하는지도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서 감정·인지에 대한 연구를 하다보면 정신질환에 대한 연구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다른 뇌 과학자들은 정신질환 치료는 넘어야 할 벽이 많다고 지적한다. 당장 우리가 만든 뇌칩이나 오가노이드가 스스로의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조차 아직은 알 수 없다.)
파커 교수는 뇌 칩 외에도 바이오 소재 등을 활용해 심장 판막이나 혈관을 만드는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서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는 파커 교수는 실제로 한국인 연구원들을 많이 데리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내 밑에 있는 한국인 연구원들이 조만간 언론에서 크게 주목할 연구 성과를 낼 것"이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파커 교수는 "나는 한국 야구 팬"이라며 자신이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스를 응원한다고 했다. 자기 자동차에 두산 베어스 야구 모자를 가지고 다닌다며, 사진을 촬영할 때 그 모자를 가져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