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지난 9월 20일과 25일 잇따라 보도한 이춘재의 고교 시절 사진(왼쪽). 가운데는 조선일보가 새롭게 입수한 이춘재의 고교 졸업 앨범 사진. 오른쪽은 화성 사건 당시 몽타주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이춘재(56)가 화성 사건 9건을 포함해 14건의 살인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자백했다. 이춘재는 30여 건의 강간과 강간미수 범행도 털어놨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9차례 대면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춘재가 이같이 자백했다고 밝혔다.

반기수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장(경기남부청 2부장)은 "이춘재가 현재까지 총 14건의 살인과 30여 건의 강간과 강간미수 범행을 자백하고 있다"며 "그러나 자백의 내용이 초기 단계이고 구체적인 사건의 기억이 단편적이거나 사건에 따라 범행 일시와 장소, 행위 등에 편차가 있어 계속 확인 중"이라고 했다.

1986~1991년 발생한 화성 사건은 모두 10건인데 이중 8차 사건은 모방범죄로 밝혀져 범인이 검거됐다. 이춘재는 8차를 제외한 화성 사건 9건뿐만 아니라 별도로 5건의 살인을 더 저질렀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화성 사건 전후에 인근에서 일어난 3건의 미제 사건, 이후 1993년 4월 충북 청주로 이사한 뒤 2건의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살인 중에는 청주 처제 살인 사건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추가 범행은 화성사건 외에 화성지역에서 3건, 충북 청주에서 처제 살해 전 2건 등으로 전해졌다. 사건 발생 시기는 1986년 군 제대 이후부터 1994년 청주 처제 살인 사건 이전까지로 추정된다. 그러나 경찰은 구체적인 내용과 진술은 공개하지 않았다. 반 수사본부장은 "진술이 임의적이어서 신빙성을 확인하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또한 이춘재가 자백한 30여 건의 강간과 강간미수 사건의 구체적 시기와 장소, 내용 등에 대해서도 답변을 피했다.

경찰은 이춘재가 자백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프로파일러와 이춘재가 라포(rapport·친밀관계)가 형성된 상태에서 국과수 감정 결과를 제시한 것이 계기가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며 "지난주부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자백을 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최근 국과수로부터 4차 사건의 현장증거물에서 검출된 DNA가 이춘재의 것과 일치한다는 통보를 추가로 받았다. 기존 5·7·9차에 이어 4차 사건에서도 DNA 일치 결과가 나왔다고 통보한 것이 이춘재의 자백을 이끈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반 수사본부장은 "잔여 증거물에 대해서도 추가 감정 의뢰한 상황"이라고 했다. 30여 건의 강간 및 강간 미수 사건에 대해서는 사건이 특정된 이후 관련 증거물에 대해 추가 감정을 의뢰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법최면 전문가를 투입해 목격자 1명과 피해자 1명에게 각각 법최면을 실시하기도 했다. 다만 반 수사본부장은 "이춘재를 접견했을 때는 법최면 전문가를 활용하지 않았다"며 "피해자와 목격자에 법최면을 실시한 것은 맞지만 자백을 이끌어내는 데 최면수사 결과를 활용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춘재가 자백한 30여 건의 강간 및 강간미수 사건에 대해 수사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경찰은 "강간과 강간미수 진술 부분은 아직 사건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진술을 이끌어내야 하는 단계로 아직 수사기록을 확인할 단계가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춘재의 자백 중 일부 구체적 진술이 확인된 사건에 대해서는 실제 개별 사건 수사기록 등을 대조하며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춘재 추가 자백 사건도 모두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법률검토팀과 전문가로 구성된 외부자문위원단을 통해 신상공개 등 추후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반 수사본부장은 "1차적으로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관련된 실체적 진실규명이 최우선 목적"이라면서 "다만 이후 용의자 신원특정 등에 대해서는 자문결과를 참고해서 심중하게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춘재는 현재 부산구치소 독방에 수감된 상태로 알려졌다. 수사가 진행된 이후 가족과의 접촉도 제한됐다. 경찰은 경기남부청 인근으로 이감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