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 새벽부터 북동쪽으로 차를 몬다. 400㎞를 달려 '라센 국립공원'에 다다르자 나무들이 빽빽이 찬 삼림이 나타났다. 인간 세상과 분리된 또 다른 세계를 향해 이동하는 기분이다.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둥근 쟁반 모양 레이더가 멀리서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지름 6.1m짜리 거대한 '접시' 42개로 이뤄진 전파 망원경이 모인 이곳은 '햇크리크 천문대'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앨런이 2500만달러(약 300억원)를 기부해 설립했다. "외계 지적 생명체가 있을까?" 2007년 가동을 시작한 이 망원경군(群)은 끝없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이 질문을 쫓고 있다. 앨런만이 아니다.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 데이비드 패커드(휼렛패커드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구글 공동 창업자) 등 미국의 알 만한 갑부들은 지적 외계 생명체를 찾는 일에 막대한 돈을 기부했다. 요즘 갑부들이 가장 열 올리는 취미가 '외계인 사냥'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경영학도인 나는 궁금했다. 이들은 외계 생명체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고 진지하게 믿는 것일까. 지난여름의 끝자락에 미국 캘리포니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상? 과학!…현실화한 외계인 탐사

햇크리크 천문대는 천체물리학자 프랭크 드레이크가 외계인 탐사를 위해 1984년 설립한 캘리포니아주(州) 마운틴뷰의 외계지적생명체탐색(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연구소가 운영한다. 앨런의 망원경들은 1초도 쉬지 않고 우주 공간을 훑고 있다. 자연엔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 만들었을 인위적 라디오 주파수를 우주에서 포착하는 것이 목표다. 매년 망원경 유지·보수에 250만달러가 들어간다. 하지만 아직 성과는 없다. SETI 연구소 세스 쇼스택 선임연구원은 그럼에도 상당히 낙관적이었다. 그는 "외계인 탐사는 공상이 아니라 과학의 영역이니까, 증명하면 된다"고 했다. "우주에는 1000억 개가 넘는 별이 존재합니다. 오로지 지구에만 지적 생명체가 살 수 있다고? 그게 합리적인 생각일까요?" 이 과학자는 괴짜 공상가가 아닌, 천문학 박사다. 이 연구소에 일하는 박사급 연구원만 약 90명에 달한다.

최근 방문한 캘리포니아대 SETI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반소매·반바지 차림으로 전파 망원경이 수집한 신호를 분석하고 있었다. 앤드루 시미언(왼쪽에서 셋째) 박사는 “수집된 자료가 방대하기 때문에 분석을 위해 일반 대중의 컴퓨터를 활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맨 왼쪽이 김양우 탐험대원.

미국에서 만난 과학자들은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아낼 가능성이 전에 없이 커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다양한 영역의 기술이 발달하며 외계인 탐사가 공상을 벗어나, 과학의 영역으로 점차 들어오고 있다는 얘기였다. 망원경의 성능이 점점 더 좋아지고 이 망원경들이 수집한 정보를 분석할 컴퓨터 연산 속도도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 빠르게 발달하는 인공지능(AI) 기술까지 결합하면 '외계인 사냥' 속도는 더 빨라진다. AI는 특히 '특이 신호'란 증거를 인간보다 더 예민하게 잡아낼 수 있다.

◇갑부들 거액 기부, 일반인 500만명 참가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를 찾았다. 1992년 출범한 UC버클리 SETI 연구소 칠판엔 눈이 빙빙 도는 어지러운 공식이 적혀 있었다. 반소매·반바지 차림의 연구원 10명이 노트북 컴퓨터 앞에 앉아 중국·영국·아일랜드·스웨덴 등에 있는 전파 망원경이 수집한 외계의 '신호'들을 골똘히 분석 중이다. 연구소 앤드루 시미언 박사는 "인공위성·휴대전화 등 인간이 만든 신호를 걸러내기 위해선 여러 번의 데이터 분석이 필요한데, AI를 활용해 분석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연구소는 수집된 자료 분석을 위해 일반 대중의 컴퓨터를 활용하기도 한다. '세티앳홈(SETI@Home)'이라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개인 컴퓨터를 인터넷으로 연결해 각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자료 분석에 활용한다. 지금까지 500만명이 넘는 일반인이 참가했다.

지름 6.1m의 전파 망원경 42개가 모여 있는 햇크리크 천문대 모습. 1초도 쉬지 않고 외계 신호를 포착하기 위해 우주 공간을 훑고 있다.

'그들'의 신호를 포착하는 일은 훨씬 현실로 다가온 듯했다. 그래서 저커버그·브린 등이 이 연구에 수천만달러를 기부했으리라. 1990년대 초 SETI 연구를 중단했던 미 항공우주국(NASA)도 지난해 연구 재개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연구소를 나오는 길,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외계인이 존재하는지, 알아서 무엇 하나요?" 시미언 박사는 "쉬운 질문"이라며 웃었다. "생명체는 이 질서정연한 우주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복제하며 발전해가는 놀라운 존재입니다. '이 넓은 우주에 (지적 생명체는) 우리뿐인가.' 생각하는 존재로 태어난 인간이 던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질문 아닌가요."

[미탐100 다녀왔습니다]

영화 '콘택트'처럼… 불확실에 맞서는 과학자들의 신념에 뭉클

영화 '콘택트'를 보면서 우주 과학자 꿈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조디 포스터는 돈 낭비라는 주변의 비판에도 외계 신호 발견이라는 자신만의 꿈을 향해 노력합니다.

저는 경영학도입니다. 회계학과 마케팅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미지 세계에 도전하는 우주 과학자를 동경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청년 미래탐험대 100도 그런 이유에서 지원하게 됐습니다.

탐험을 준비하면서 우주과학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해 준비 과정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몰랐던 것을 배워나가는 것에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성취감을 맛봤습니다.

외계 지적 생명체 탐색 프로젝트는 불확실한 도전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만난 과학자들을 통해 본인의 자리에서 신념을 갖고 일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배웠습니다. 제게도 소명처럼 다가올 직업, 진로가 어떤 방향이어야 할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