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관 '수리수리집수리' 저자

"우리 집 마당에 길 고양이들이 살잖아요. 식구가 늘어 스무 마리는 돼요. 데크 아래로 들어가 새끼를 낳는데 더러는 거기서 죽는 거예요. 그렇다고 들어간 입구를 막으면 이미 들어간 녀석들이 못 나오고. 그래서 동네 수리업자를 불렀는데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거예요."

또 그 집이었다. 옆집 아저씨가 마당을 기웃거린다고 해서 목책을 설치했고, 침실 문의 도르래가 이탈해 벽을 뜯고 수리한 일이 얼마 전인데 이번엔 고양이가 죽었다는 것이다. 자기도 미안했던지 그 동네의 업자를 불렀다가 하는 일이 미덥지 않자 나를 통해 감독하려는 것이었다.

"세상에 고양이 새끼들이 들어간다고 그걸 막는 공사를 해달라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래. 그냥 약을 놔서 직이면 되지. 이게 다…, 먹고살 만해서 그런 거야."

내가 같은 업자임을 눈치 챈 수리업자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땅과 벌어진 틈을 막으면서도 데크가 공중에 떠 있게 보이려는 애초의 설계 의도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은 다음에 업자를 불러야 했다. 왜냐하면 그는 정해진 일을 '수행(시공)'하는 것이지 아이디어를 '제안(설계)'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번 일도 결국 내 몫이 되고 말았다. 고양이가 들어갈 만한 틈을 실측해서 경사 지형의 높낮이 편차를 조사하고, 막히되 바람이 통하고 데크의 밑동을 어둠으로 인식하게 하는 재료를 이용해 고양이 출입 방지망을 설계하는 일이다. 역사상 어느 건축가도 수행한 일이 없을 프로젝트를 맡은 것인데, 또 한편의 걱정은 우리 직원들의 이해 여부였다. 학창 시절 여러 건축상을 받으며 르 코르뷔지에와 그의 '빛나는 도시'를 가슴에 품은 예비 건축가들에게 그들의 '아키텍처(architecture)'와 나의 '집수리'는 어떻게 같고 무엇이 다른가를 납득시키는 일 말이다. 치켜뜬 눈을 어떻게 누그러뜨리냐는 것이다. 집이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사소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