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두두…." 오후 1시 24분. 조용하던 병원에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순간 간호사가 뛰어와 전화를 받으며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 알 수 없는 암호문을 적기 시작했다. 'T2, Ped Struck, 12:55, RSI, 5min….' 낮 12시 55분 교통사고를 당한 중증 외상 환자가 메릴랜드주(州) 볼티모어 서부 지역(T2)에서 헬기로 5분 안에 이송돼 도착할 예정이며 그 과정에서 기도 내 삽관(揷管)을 받았다는 뜻이다.

5분 후, 병원 상공 저편에 까만색 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증 외상 환자 이송을 담당하는 경찰항공대 소속 헬기였다. 병원 옥상 위로 헬기가 착륙하자 의료진이 곧바로 환자를 외상처치실로 옮겼다. 대기하던 의료진 9명은 즉시 환자를 둘러싸고 지혈하며 처치해 나가기 시작했다. 볼티모어에서 50㎞ 떨어진 마을에서 사고를 당한 환자가 메릴랜드주 최고 등급 의료 시설에서 전문 의료진의 손길을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40분이다.

미국 볼티모어 쇼크 트라우마 센터에는 매년 7000명이 넘는 환자가 이송된다. 가장 심하게 다친 1등급 환자가 오는 시설이다. 경찰 항공대가 7대의 헬리콥터로 환자를 이송하면 24시간 대기 중인 의료진이 곧바로 투입된다.

볼티모어에 있는 'R 애덤스 코울리 쇼크 트라우마 센터(STC)'는 1960년 문을 연 중증 외상센터다. 이 센터에는 외상전문의·간호사 등을 포함한 의료진 50여명, 환자용 병상 100여개, 중증 외상환자 13명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는 외상처치실 등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지난해만 중증 외상환자 7113명이 이곳으로 이송되고 이 중 97%가 목숨을 건져 병원 문을 나갔다. 중증 외상센터의 의료 수준을 나타내는 더 정확한 지표인 예방 가능 사망률(중증 외상 사망자 중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이의 비율)은 2%로 미국 최저 수준이다. 한국은 31%(2016년 기준)다.

◇주 전체가 하나의 매뉴얼로

경쟁력의 핵심은 '병원, 경찰, 주 정부'의 삼박자 시스템이다. 애덤스 코울리 박사는 메릴랜드주립대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시절 중증 외상 환자들이 60분 안에 적절한 처리를 받으면 살아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골든아워' 가설에 착안해 이 센터를 설립했다. 이후 경찰항공대가 헬리콥터 이송을 지원키로 했고, 주 정부가 전체 체계를 관리하는 기구인 '메릴랜드주 응급의료서비스시스템(MIEMSS)'을 세웠다. 주 전체를 총괄하는 하나의 응급 의료 시스템을 완성한 것이다.

볼티모어 쇼크 트라우마 센터엔 동시에 13명의 중증 외상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이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환자가 발생하면 현장에 출동한 응급구조대원이 환자 상태를 1~5등급으로 나눈다. 주 전역에 있는 헬리콥터 7대가 매뉴얼에 따라 환자를 이송한다. 이 가운데 볼티모어 STC는 가장 심하게 다친, 1등급 환자가 오는 시설이다. 실제로 이 센터를 방문한 이틀 동안 메릴랜드주 전역에서 중증 외상환자들이 헬기로 이송돼 신속하게 의료진의 처치를 받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예를 들어 참관 둘째 날 목격한 환자는 집 발코니에서 추락해 이송돼 온 환자였다.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산소 호흡기를 신속히 부착하는 한편 부러진 다리뼈를 맞추는 긴급 수술에도 순식간에 돌입했다.

이런 시스템은 미국 안에서도 독특한 모델이다. 다른 주의 경우 환자가 발생하면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일단 이송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MIEMSS의 티머시 치즈마르 응급의학 박사는 "다른 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 통합 모델을 도입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나 정치·금전적 이해관계에 막혀 종종 실패했다"고 말했다.

◇효율보다 생명 구하는 게 우선

7층에 있는 중환자실은 심각한 외상을 입어 방문한 환자 중에서도 상태가 위중한 사람을 치료하는 곳이다. 방문한 날 6개의 병실 모두가 비어 있었다. '노는 병실'인데도 의료진 전체가 긴장된 모습으로 대기 중이었다. 가천대 길병원 양혁준 응급의학과 교수는 "한국에선 이런 '빈 병상'을 두고 비효율적이란 비판이 제기돼 중증 외상센터 확충에 반대하는 논리로 활용되곤 한다"고 했다. 볼티모어 STC의 테리 디날도 전문간호사는 "병상이 종종 비어 있어 예산과 기술을 낭비한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우리 주에서도 항상 있었다"며 "하지만 모두가 준비된 상태로 대기하는 것이 환자 한 명의 목숨을 살리는 데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효율보다는 생명을 앞세운 이런 조치는 중증 외상 의료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메릴랜드주는 자동차 번호판 등록세 일부(지난해 기준 990억원)를 응급의료시스템을 위해 쓴다. 이를 헬기(41%), MIEMSS(24%), 자원봉사(20%), 소방구조대(11%), 쇼크 트라우마 센터(4%) 운영비로 나눠 쓰는 것이다. 덕분에 메릴랜드주는 대당 4000만달러에 달하는 헬리콥터 7대를 보유하고 이를 외상센터용으로 쓰고 있다. 이송된 환자들은 각자 가입한 보험을 통해 치료비를 내지만, 헬리콥터 이용 비용은 추가로 내지 않는다.

현재 한국에서는 전국에 민간 권역 외상센터 17곳이 지정됐고 15곳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인구 1000만명인 서울에 아직 중증 외상센터가 없을 정도로 예산·인력 등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미탐100 다녀왔습니다]

州 정부·병원·경찰, 하나의 바퀴처럼 굴러가 감동

간호대 3학년에 재학 중인 저의 관심 분야는 중증 외상입니다.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님의 목소리에서 시작돼 우리나라에 중증 외상센터 개념이 자리 잡은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인력과 예산, 인식 등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토머스 스칼리아(왼쪽) 쇼크 트라우마 센터장과 김현진 탐험대원.

직접 경험해 본 미국 메릴랜드주(州) 중증 외상 의료의 핵심은 목표 하나를 향해 모두가 체계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이었습니다. 중증 외상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병원, 주 정부 긴급 의료 시스템, 경찰항공대가 하나의 바퀴처럼 굴러갔습니다. 경기도 면적의 세 배에 달하는 메릴랜드주 곳곳에서 발생하는 외상 환자는 예외 없이 골든아워(사고 후 60분) 안에 중증 외상센터로 이송됐습니다. 60년간의 노력과 시행착오로 완성해낸 메릴랜드주 시스템처럼 우리도 한국형 중증 외상 시스템을 차근차근 만들어간다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