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관 '수리수리집수리' 저자

집수리하며 조심하는 것 중 하나는 동네의 민원이다. 초기엔 대개 "이웃 간에 이해해야죠"라고 말한다. 그러다 양해받을 횟수가 잦아지면 "언제쯤 공사가 끝나요?" 하다가 그래도 끝날 조짐이 안 보인다 싶으면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로 진화하는데 그때가 바로 민원의 골든타임이다.

신고된 이후 중요한 것은 "구청에서 나왔습니다!"라는 소리를 민원인이 들었는지 여부로, 수리업자가 공무원에게 쩔쩔매는 모습까지 민원인이 목격했다면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민원의 표면적 이유는 소음, 분진, 진동 등 현실적 이슈이지만, 이면의 이유는 대부분 자신의 말이 무시당한다는 데서 오는 소외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이런 소동을 겪고도 어디선가 용접 불꽃이 새어 나오고, 컴프레서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그땐 인사조차도 묵살하거나 혹은 "이렇게 오래 공사하면 이문이 남기나 하겠어요?"로 누그러진다. 전자는 원한 섞인 체념이라면 후자는 연민인데 한편으론 집수리가 끝나간다는 징후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말은 "언제 집 구경 좀 합시다"이다.

얼마 전에도 민원이 있었다. 출동한 동사무소 직원은 동네 한복판에 절을 지으면 어떡하냐고 따졌다. 절이라니. 집수리 십 년 만에 처음으로 겪는 신종 민원으로 내가 수리하던 집은 집 장사도 포기하고, 복덕방도 소개를 꺼리던 호호백발의 노후 주택인데 누가 그곳에 불당을 차린단 말인가.

알고 보니 원인은 우리끼리 부르는 집의 명칭 때문이었다. 집 한 채는 당장 주저앉을 성싶어 '두꺼비집'으로, 다른 한 채는 절벽 아래에 있어 '암자'라고 불렀는데 누군가가 그걸 듣고 오해를 한 것이다. 우리에게 '암자'는 별명이었으나 민원인에겐 '템플'이었던 것이다.

그때 슬그머니 창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동사무소 직원을 불러들인 그임을 직감한 난 절벽을 향해 목 놓아 외쳤다.

"박 보살님! 암자를 다 지으면 스님들이 오실 텐데 공양은 무엇으로 준비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