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국대신 위안스카이|이양자 지음|한울|240쪽|2만8000원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계기로 조선에 들어온 위안스카이(袁世凱·1859~1916)는 1885년부터 1894년까지 감국(監國) 대신으로 이 땅에 머물며 온갖 간섭을 자행하고 국권을 침탈했다. 저자는 그 실상을 전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것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파고든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은 조선의 망국과 자주적 근대화의 좌절을 일제의 조선 강점 탓으로 여기지만, 실은 위안스카이에 의한 국권 유린이 더 큰 해악을 끼쳤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위안스카이의 등장 배경에는 청(淸)의 대조선 정책 변화가 있었다. 건국 이래로 청은 비록 조선의 종주국임을 자임했으나 위안스카이 파견 이전에는 사대만 요구했을 뿐이다. 그러나 서양의 제국주의 질서가 동양에 밀려오자 청은 자신들이 강요당했던 질서를 조선에도 적용해 실질적인 속국화를 추진했다. 특히 조선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기 위해 조선 정부의 차관 교섭을 방해하고, 외교관 파견을 봉쇄했다.
저자는 그러나 위안스카이를 악당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제삼자의 눈으로 볼 때, 위안스카이는 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서 자기 나라를 위해 능력을 발휘한 인재에 가깝다. 오히려 고종의 무능력과 조선 정부의 국제 정세에 대한 무지 등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위안스카이는 미국·영국·프랑스 등으로부터 차관을 들여오려는 조선의 시도를 막기만 한 게 아니라 대신 청의 돈을 빌려 쓰라고 강요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꾀했다. 이렇게 된 이면에는 방만하고 사치스러운 조선 왕실의 살림과 그로 인한 빚더미 재정이란 치부가 숨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