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독일에서 만난 경제학자가 통일 이후 독일이 예상보다 더 고전한 사정을 들려주었다. 동독은 사회주의권에서 잘사는 축에 속했고 서독에서 꾸준히 동독 경제 연구도 했는데 그게 말짱 헛것이었다고 했다. 동독 통계가 허구였기 때문이다. 실제 경제는 통계보다 훨씬 썩어 있어 통일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고 했다.
▶냉전 시대 자본주의와 체제 경쟁을 벌이던 사회주의 국가에서 통계 조작은 일상이었다. 소련은 50년 동안 국민소득이 90배 늘었다고 공식 통계에서 밝혔는데 알고 보니 6.5배 늘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2015년 말 중국의 한 농촌에서 마을 어린이들한테 흰 봉지를 씌워 산 중턱에 눕혀놓았다. 멀리서 보면 양(羊)처럼 보이게 했다. 시찰 나온 공산당 간부에게 농촌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꾸미려던 것이다. 리커창 총리가 랴오닝성 당 서기 시절 "중국 통계는 신뢰할 수 없다. 나는 전력소비량 등 세 가지 통계만 믿는다"고 했다. '리커창 지수'가 그래서 생겼다.
▶망하는 나라, 불투명한 정부일수록 통계를 '마사지'하고, 나쁜 지표는 분칠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좌파 정권 시절 아르헨티나는 공식 물가 상승률은 연간 10%였지만 실제로는 30%가 넘었다. 그리스는 재정 적자를 축소 발표했다가 들통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나라가 망한 베네수엘라도 중앙은행이 지표를 마구 조작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문재인 정부 들어 통계 논란이 잦다. 엊그제 비정규직이 1년 새 87만명 급증한 것으로 나오자 집계 기관인 통계청에 비상이 걸렸다. 보통 담당 과장이 설명하던 보도자료를 이례적으로 통계청장이 직접 나서 해명했다. "ILO 기준대로 질문을 바꿨더니 그동안 정규직이던 수십만명이 비정규직이 된 것"이라고 한다. "소득 주도 성장의 긍정 효과가 90%"라던 엉터리 보고서를 만든 공로로 발탁된 바로 그 통계청장이다. 청와대 일자리수석과 각 부처까지 총동원돼 "이전 통계와는 비교 불가"라며 통계 방어에 나섰다. 이들은 국민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정부는 통계에 유독 민감하다. 일자리 통계, 경제성장률 통계, 물가 통계 등이 나올 때마다 전전긍긍한다. '풀 뽑기' '꽁초 줍기' 같은 세금 일자리로 일자리 통계를 부풀리는 것도 통계 숫자에 목을 매기 때문이다. 통계가 나쁘게 나오면 '전(前) 정부 탓' '날씨 탓' '인구 구조 탓'을 한다. 이들에겐 국민 삶의 실질이 아니라 숫자와 선전이 더 중요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