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주말뉴스부장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은 퓰리처상과 함께 미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 올해는 한국계 수잔 최(50)가 받아 더 눈길이 갔습니다. 엊그제 본지 문화면에 이메일 인터뷰가 실렸더군요.

수잔 최가 한국계라는 사실은 많은 언론에서 화제가 됐지만, 그가 일제강점기 영문학자 최재서(1908~1964)의 손녀라는 점은 크게 언급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친일(親日) 낙인이 알게 모르게 부담을 주기 때문이겠죠.

영국 작가 하틀리의 소설 '중매인'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과거는 외국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 역시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유종호(84)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 문장을 빌려와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이라는 에세이집을 냈죠. 당시의 친일을 지금의 관점으로 비판하려면 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는 경험적 고백록이었습니다.

6년 전인가요. 생전의 김윤식 서울대 교수를 만났을 때입니다. 다음다음 날 일본 도쿄대에서 강연한다 하시더군요. 제목은 '한국에서 외국 문학을 어떻게 수용했는가'. 이런 에피소드를 들려줬습니다. 경성제대 영문과에 사토 교수라고 있었다는 것. 정년을 마치고 일본에 돌아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경성제대 영문과에는 조선의 수재들이 다 모여 있었다. 그 수재들이 외국 문학을 통해 민족의 해방과 자유를 염원했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받았다."

사토 교수의 직계 제자가 최재서였습니다. 2019년의 어떤 후배 세대가 보기에 최재서는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지만, 당대에 그를 경험한 일본인에게는 문학으로 조국의 해방과 자유를 꿈꾸던 조선의 수재였던 것이죠.

최재서는 런던대학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경성제대와 보성전문에서 영문학을 가르쳤고, 그의 아들 최창은 미국 미시간대에서 수학 박사를 받고 인디애나대학 수학과 교수가 됐습니다. 최창의 딸 수잔 최는 예일대 영문과를 나와 영어로 소설을 쓰고 있고요.

이번 전미도서상을 받은 작품 제목은 Trust Exercise.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는데, 굳이 옮기자면 '신뢰 연습'쯤이 될까요. 자신에겐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인간의 아이러니가 그 안에 있다고 하더군요. 수전 최는 "할아버지의 삶과 그가 남긴 복잡한 유산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의 삶을 다룬 소설을 완성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궁금합니다, 수잔 최가 완성할 소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