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는 최모(25)씨는 매일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좋아요'가 100건을 넘지 않는 사진을 지우는 것이다. 최씨는 "음식 사진, 셀카를 엄선해서 올리는데, 좋아요 수가 많지 않거나 댓글이 적게 달리면 자존심이 상한다"며 "좋아요 100개는 나의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지인의 인스타를 방문해 제대로 글을 읽지도 않고 '좋아요'를 계속 누른다. 그는 "이렇게 좋아요 품앗이를 해야 남들도 내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다"고 말했다. 매일 한두 시간씩 인스타그램을 하는 그는 "주변에선 '인스타 할 시간에 구직 활동을 하라'고 구박하지만, 좋아요 숫자가 많은 것도 훌륭한 스펙 아니냐"고 말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트위터 같은 국제적 소셜미디어 서비스와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 기업이 게시글이나 기사에 달리는 댓글·좋아요 기능을 축소하고 있다. 이용자가 원하면 몇 명이 '좋아요'를 눌렀는지 공개하지 않거나, 댓글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타인과 연결을 경쟁력으로 몸집을 키웠던 소셜미디어 서비스가 이젠 소통 제한에 나선 셈이다. 그동안 소셜미디어 업체들은 좋아요 숫자나 댓글이 많은 게시물을 '소통'이라는 명분으로 부추기며 사용자 수를 늘렸다. 하지만 댓글과 좋아요가 인터넷 중독 폐해를 불러오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또 드루킹 사건과 같이 여론 조작에 악용되고, 악성 댓글로 상대를 비방하는 사이버 명예훼손이 급증하면서 소셜미디어 기업들조차도 이를 더 이상 내버려두지 못하는 상황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감을 나타내는 좋아요 숫자는 온라인에서 위세를 나타내는 척도로 자리 잡았다"며 "좋아요 숫자가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기는 측면이 강하고, 이용자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등 2차 피해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페북·인스타·트위터… 소통 기능 축소
인스타그램은 지난달 14일(현지 시각) 한국과 미국, 독일, 인도, 인도네시아 등 5국에서 일부 사용자 계정에서 좋아요 수를 보여주지 않는 기능을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 이탈리아·일본 등 7국에서 진행하던 조치를 12국으로 늘렸다. 국내 인스타그램 사용자 중 일부는 다른 사용자가 올린 게시물에서 좋아요 숫자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님 외 여러 명이 좋아합니다'라는 표시만 볼 수 있다. 페이스북도 한국,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비슷한 기능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국내 페이스북 이용자 열 명 가운데 한 명 정도는 지인의 게시글을 봐도, 좋아요 숫자가 보이지 않는다.
트위터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지난달 21일 보고 싶지 않은 댓글을 숨기는 '답글 숨기기' 기능을 추가했다. 예전엔 자기가 올린 게시물에 남이 악성 댓글을 달아도, 상대 계정을 차단하지 않는 한 댓글을 숨길 수 없었다.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 기업도 포털 댓글 기능을 축소하고 있다. 포털 다음에선 연예 뉴스에 댓글을 다는 기능을 아예 없앴다. 네이버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이 불거지자, 지난해 4월 이용자 1명당 달 수 있는 댓글 수를 3건으로 제한했다.
◇악성 댓글에 '좋아요 노예'까지
시장조사 업체 이마케터에 따르면, 2015년 19억8000만명이던 전 세계 소셜미디어 이용자는 올해 28억9000만명으로 46% 증가했다. 소셜미디어에서 댓글이나 좋아요 숫자는 타인의 관심도이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일부 10~20대 인스타그램 사용자는 수십만원을 내고 사설 업체에 좋아요 숫자를 늘리는 작업을 의뢰하기도 한다. 일부 이용자는 좋아요를 위해 자신의 삶을 왜곡한 게시물을 올리기도 한다. 숨을 헐떡이며 조깅했지만 인스타·페북엔 멋진 포즈로 조깅하는 사진을 올리는 식이다. 한 인터넷 기업 관계자는 "'좋아요 노예'라는 신조어까지 나오는 상황"이라고 했다.
사이버 명예훼손 사건도 급증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사이버 명예훼손 사건은 2014년 7447건에서 지난해 1만4661건으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학생과 성인 7562명을 대상으로 사이버 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약 30%가 언어폭력과 명예훼손 등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