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바젤 마이애미에 출품된 이탈리아 설치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을 한 관람객이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수퍼마켓에서도 살 수 있는 평범한 바나나를 은색 박스테이프로 벽에 붙이고, 설치미술가는 '작품'이라고 했다. 전시장에 나타난 행위예술가는 '작품'을 먹어 치웠다. 설치미술가는 태연하게 새 바나나를 벽에 붙이고는 똑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작품'은 1억원이 훨씬 넘는 가격에, 그것도 세 번이나 팔렸다.

지난 5~8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미술 장터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는 일반 대중이 보기엔 황당하달 수밖에 없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우선 벽에 테이프로 붙인 바나나를 과연 미술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문제의 작품 '코미디언'은 이탈리아 설치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념미술 작품"이라며 "바나나를 벽에 붙이는 행위를 통해 표현하려 한 작가의 아이디어, 즉 개념이 작품이지 바나나 자체가 작품이 아니다"라고 했다.

바나나 자체가 작품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새 바나나로 갈아 끼워도 된다는 것. 미국 행위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가 바나나를 먹어 치우고도 구속되지 않은 이유다. 다투나는 "파괴가 아닌 행위예술이기에 전혀 미안하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P21 갤러리 최수연 대표는 "아트바젤에 이 작품을 출품한 페로탱 갤러리와 다투나가 '짜고 쳤다'는 루머가 미술계에 파다하다"고 했다. "미술품의 가격은 작가나 작품의 인지도가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다투나의 해프닝으로 '코미디언'이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알 정도로 유명해졌으니, 다투나와 페로탱이 공모했다는 소문이 날 만도 하죠."

실제 '코미디언'은 다투나의 해프닝 전 12만달러(약 1억4000만원)에 두 소장가가 샀지만, 해프닝 이후 구매한 소장가는 3만달러가 오른 15만달러(약 1억7500만원)를 지불했다.

실체가 없는 개념미술은 어떻게 사고팔까.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구입자가 실제 손에 쥐는 구체적 물질은 '진품 보증서'와 작품 설치 방법을 명시한 '작품 설명서'"라고 했다. 진품 보증서는 작가에게 돈을 지불하고 작가의 개념을 샀다는 계약서이고, 작품 설명서는 어떤 소재와 방식으로 작품을 설치할지 명시한 지침이다. "작가에 따라 다르지만, 카텔란은 성격상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지정하기보단 '바나나를 테이프로 부착하라'는 식으로 대강 써놨을 겁니다."

작품 주변에 경비를 세워야 할 정도로 '코미디언'이 화제가 되면서 미국 배우 브룩 실즈는 바나나를 이마에 테이프로 붙이고 찍은 사진을 '값비싼 셀카(Expensive Selfie)'란 제목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패스트푸드 업체 버거킹은 바나나 대신 감자튀김을 붙인 뒤 '0.01유로'라고 적거나, 프랑스 탄산수업체 페리에는 물병을 붙이는 등 개인과 기업 가리지 않고 패러디를 쏟아내고 있다.

이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개념'을 소유하려고 1억원 넘게 지불할 가치가 있을까. "피카소, 앤디 워홀 등 역대 작가들도 같은 비난을 들었습니다. '나도 그리겠다'라는 비아냥이 쏟아졌죠. 작품의 가치는 미술사적 선구자성, 독창성, 지명도가 결정합니다. 누구보다 먼저 시도했느냐,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 했느냐에 따라 가치, 즉 가격이 매겨진단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