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3월 18일, 뉴욕 근대미술관 조각 공원에 가로 7미터에 높이 8미터가 넘는 거대한 기계가 등장했다. 크고 작은 자전거 바퀴 십여 개에 피아노와 욕조, 온갖 금속 부품이 얼기설기 연결된 가운데 모터가 돌아가며 연기와 굉음을 내는 괴물 같은 장치였다. 옷감이 깃발처럼 나부끼며, 한편에서는 넓은 두루마리 종이가 말려 올라가는 대로 붓을 힘차게 휘둘러 불규칙한 궤적을 그려내던 이 기계에서 갑자기 불꽃이 일었다. 작동하기 시작한 지 채 삼십 분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신고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이 불을 끌 때까지, 화염 속에서도 멈추지 않던 기계와 불구경의 흥분과 공포에 휩싸인 관객들이 뒤섞여 빚어낸 대소동이 모두 미술가 장 팅겔리(Jean Tinguely· 1925~1991)와 동료들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장 팅겔리, '뉴욕에 바치는 찬사', 1960년, 금속·바퀴·모터 등 로버트 브리어의 흑백 영상 중 한 장면.

팅겔리는 기계가 사람들 일상에 깊이 파고든 현대사회에서는 미술 또한 기계와 결합해 움직여야 한다고 믿었다. 대표적 현대 도시 뉴욕은 바로 거리에 나뒹굴던 잡동사니들이 모여 이룬 거대하고도 기괴한 기계 장치였던 것. 움직이는 조각, 키네틱 아트를 선도했던 팅겔리는 이전에 관객들이 동전을 넣으면 그럴듯한 추상화를 그려주는 기계를 만들기도 했다. 자판기처럼 그림을 뽑아내는 팅겔리의 설치 작품은 당시 미술계를 주도하던 추상표현주의의 지나친 영웅주의와 기계에 대한 맹신 양자를 비꼬는 그의 블랙 유머였다.

예술하는 기계는 자폭(自爆)으로 최후를 맞았다. 영혼 없는 자기 작품에 실망한 기계의 결정이자, 팅겔리의 예견이었다. 그가 인간의 학습 능력을 추월한 오늘날의 인공지능을 마주한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