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을 봤더니 최근에 이별했던데?" "너무 참견하는 느낌인데." "곧 익숙해질 거야."
영화 '그녀'에서 주인공이 인공지능(AI)과 나누는 대화는 사람과 나누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사용자 기분을 알아채고 대응하는 AI가 현실에도 등장할 수 있을까. 음성이나 글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분석하는 기술인 '감성 컴퓨팅'이 영화 구현의 열쇠일지도 모른다.
네이버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는 나는 편리한 IT 서비스 구현을 고민하다가 감성 컴퓨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간의 미세한 감정이나 반응을 포착해 분석할 수 있다면 IT 서비스도 획기적으로 변할 수 있다. 아마존이 개최하는 AI 개발자 대회인 '알렉사 프라이즈'는 감성 컴퓨팅의 현재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아마존은 전 세계 연구팀이 개발한 대화형 AI를 자사 AI 스피커 알렉사(Alexa)에 탑재해 가장 '인간다운' 대화를 나누는 팀에 상을 준다.
UC샌디에이고 컴퓨터공학부 학생들이 결성한 '버나드팀'은 딥러닝(심층 학습) 등을 기반으로 한 AI 챗봇(chatbot)을 개발 중이다. 다양한 대화를 수집해 사용자 어휘나 말투, 음조로 기분과 상황을 파악한다. 직접 대화를 나눠 본 챗봇은 대화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보스턴 레드삭스에 대해 묻자, '어제 네가 응원하는 팀이 이겼네, 어떤 부분이 제일 좋았어?'라고 되물었다. '9번 선수가 점수 냈을 때 제일 인상적이었어'라고 답하자 챗봇은 '그가 지난번 시합에도 잘했었지'라고 응수했다.
챗봇 개발 핵심은 대화할 문장을 만들어내는 데이터다. 정치, 역사, 스포츠, 연예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할 수 있도록 질 좋은 데이터를 모아야 한다. 버나드팀은 영화, 드라마, 팟캐스트 대본과 자막 등을 모아 머신러닝의 한 종류인 '인공신경망 기술'을 활용해 이를 대화로 구현한다.
UC 데이비스 대학의 건락팀 챗봇은 사용자 상황과 생각을 정확히 알고 대화하는 친한 친구를 지향한다. 이 챗봇은 막연히 '커리'라는 말을 꺼내도 이것이 음식 커리(curry)인지 농구선수 스테픈 커리(Curry) 이야기인지 맥락을 통해 읽어낸다. 이 역시 데이터의 힘이다. 사용자가 '어벤져스를 봤다'고 이야기하면 '어벤져스'가 영화 카테고리에 분류돼 있는 것을 확인한 챗봇이 '너는 어떤 캐릭터가 좋았어?'라고 답하는 것이다. 챗봇은 '음'이나 '아하!' 같은 비언어적 표현을 쓰거나 대화 흐름에 따라 음성 높낮이를 바꿔 말하기도 한다. '좋아'라고 할 때는 더 높은 톤으로, '잘 모르겠다'는 말 앞에선 잠깐 정적을 갖고 낮은 톤을 쓴다. 건락팀 리더 카이후이는 "감성 컴퓨팅이 적용된 AI는 말벗이나 상담원으로 보건 분야에서 쓰이거나 학생의 집중도를 파악해 수업을 진행하는 과외 선생님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