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현지 시각) 영국의 EU 탈퇴 협정을 표결에 부친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 의회 본회의장. 683명이 표결에 참여해 621명(91%) 찬성으로 가결되자 영국 의원들은 일제히 일어나 옆자리 EU 의원들과 악수하고 껴안았다. 이어 작별할 때 부르는 노래인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을 합창했다. 일부 의원은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흘렸다. 이 회의를 끝으로 EU 의원 자격을 잃게 된 영국인 의원 73명은 표결에 들어가기 전 미리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놓고 있었다.
유럽 의회의 비준으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가는 모든 절차가 완료됐다. 예정대로 영국은 31일 밤 11시(한국 시각 2월 1일 오전 8시) EU를 정식으로 탈퇴하게 된다. 영국은 즉시 EU 집행위원회와 유럽 의회에서 의결권·발언권을 잃는다. EU의 전신인 EEC(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한 지 47년 만이고, 2016년 6월 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진 지 3년 7개월 만이다. EU 회원국은 28개국에서 27개국으로 줄어들게 됐다. 1993년 출범한 EU에서 탈퇴한 회원국이 나온 첫 사례다.
EU 탈퇴가 확정됐지만 런던 시민들은 여전히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국민투표 때부터 촉발된 갈등과 혼란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9일 밤 런던 동부 바킹(Barking) 지역에서 만난 뮤지컬 가수 대니얼 홀(28)씨는 "요즘 세상에 영국인들만 따로 살겠다고 정치인들이 황당한 선동을 해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생겼다"고 했다. 바킹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던 스티브 맥널리(49)씨는 "더 이상 독일·프랑스가 주도하는 EU에 끌려다니지 않게 된 건 다행"이라고 했다.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시내 코벤트가든 앞에서 만난 40대 여성 틸리씨는 "일자리 빼앗아 가고 우리가 낸 세금으로 복지 혜택 가져가는 외국인이 많아 브렉시트에 찬성했다"며 "하지만 경제가 나빠질 거라고 하니 후회된다"고 했다. 일부 시민은 "나라가 심각하게 쪼개졌다"고 했다. 실제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영국은 지역 간, 세대 간 첨예한 갈등을 겪었다. 대체로 지방에 살고 고령층일수록 브렉시트를 반기고, 런던에 살고 젊을수록 브렉시트에 반대한다.
31일 브렉시트를 단행해도 당장 피부로 느끼는 변화는 없다. 기업 교역이나 개인의 이동·거주 조건에 변동이 없다. 올해 12월 31일까지는 충격을 줄이기 위한 전환 기간으로 삼아 영국이 EU의 단일 시장과 관세동맹에 머물기로 했기 때문이다. 남은 11개월 동안 EU와 영국은 무역·이민 등 양측의 향후 관계를 설정하는 협상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보통 국가 간 무역협정 체결에 2~3년은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이 촉박하다.
이 때문에 합의 없이 헤어지는 '노딜(no deal) 브렉시트'가 발생해 세계 경제에 충격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중앙은행은 노딜 브렉시트 시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8% 급감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가 분리·독립을 위해 가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되면서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등 4개 왕국 연합체인 영국이 쪼개질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29일 스코틀랜드 의회는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역사·문화가 다른 데다, EU와의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주민들 사이에는 독립국 자격으로 EU 회원국이 돼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아일랜드섬에서는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사이의 왕래가 얼마나 불편해질지가 변수다. 현재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지만 통관·검문이 까다로워지면 이에 불만을 품고 아일랜드섬 통합파인 북아일랜드공화국군(IRA) 등 무장 세력이 재부상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