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이미 끝난 의혹 재가공해 경찰에 수사 지시"
"내부 정보 빼돌려 송철호 선거 공약 수립 지원"
"당내 경쟁자에 공직 제안 등 회유, 불출마 종용"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야당 후보를 표적 수사해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知己)인 송철호 현 울산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한 선거 공작으로 검찰이 결론냈다. 이미 공정거래위원회, 울산지검 등 국가 기관이 수사나 조사가 필요없다고 종결한 사안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이 첩보 형태로 재가공해 경찰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검찰은 공소장 서문에서 "공무원은 그 직위를 막론하고 법률에 따른 공직선거에서 특정 후보자를 당선하게 하거나 낙선하게 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7일 동아일보가 공개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공소장을 보면 이 사건은 송 시장이 김기현 전 시장과 맞붙을 2018년 지방선거에서 그를 제압하기 위해 ‘네거티브’ 선거 운동 전략을 펴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김 전 시장과 관련된 비리를 ‘토착비리’로 규정짓고 토착비리에 대한 ‘적폐 청산’을 강조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송 시장은 측근인 송병기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을 통해 김 전 시장과 친인척, 비서실장 등 주변 인물들에 대해 그 실체가 확인되거나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각종 비위 정보를 수집했다. 여기에는 김 전 시장 측에 대한 청와대 진정과 경찰 고발건(件)도 포함됐다. 송 시장은 이 과정에서 황운하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을 만나 ‘김기현 관련 수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해 달라’는 취지의 부탁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모아진 김 전 시장 비위 정보는 당시 민정비서관실에 파견와 있던 문해주 전 행정관에게 전달됐다. 김 전 시장 비위 의혹에 대한 수사가 착수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경찰 업무에 대한 지시·조정, 국가 사법 관련 정책 조정 등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민정비서관실을 통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송 부시장이 작성한 비위 첩보 내용의 주요 내용은 △아파트 건설 레미콘 업체 선정 외압 의혹 △아파트 신축 사업 이권 개입 의혹 △재임 기간 중 골프 접대 의혹 등이다.
◇ 공정위 조사 종결, 검찰 무혐의 처분한 첩보로 선거 직전 공개수사
검찰은 공소장에서 문 행정관이 전달받은 김 전 시장 비위 첩보 가운데 레미콘 업체 선정 관련 의혹은 "2017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종결한 진정과 동일한 사실 관계에 기초한 내용"이라고 판단했다. 아파트 신축 사업 이권 개입 의혹과 관련해선 "울산지방경찰청이 2017년 9월 하순경 혐의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고발사건과 동일한 사실관계에 기초한 내용"이라고 했다. 이미 범죄 첩보로서 가치가 떨어져 수사에 착수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정비서관실에서 작성된 범죄첩보서는 당초 송 전 부시장이 담은 '의혹' 수준의 것을 구체적인 범죄정황으로 정리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문 전 행정관이 송 전 부시장에게 "김기현 관련 다른 것은 더 없느냐. 주변 인물들의 비리를 문서러 정리해 보내 달라"고 하기도 했다.
해당 첩보서는 상급자인 이광철 선임행정관(현 민정비서관), 백원우 당시 민정비서관에게 순차적으로 보고됐고,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을 거쳐 경찰에 하달됐다. 검찰은 백 전 비서관이 민정비서관실의 직무범위를 벗어나 위법하게 작성된 첩보임을 알면서도 별다른 검증 절차나 확인 없이 경찰 수사를 종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민정수석실 선임 비서관이던 백 전 비서관은 박 전 비서관에게 첩보를 건네며 "경찰이 밍기적 거리는 것 같은데 엄정하게 수사받게 해달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울산경찰의 김 전 시장 측근 수사가 본격화됐다. 황 전 청장은 정보경찰에 관련 첩보 수집을 지시하고, "수사할 사안이 아니다"며 이를 제지하는 기존 수사팀을 좌천 인사로 교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김 전 시장이 울산시장 후보로 공천된 당일 시장 비서실 등을 압수 수색하는 등 공개 수사를 펼쳤다.
검찰은 경찰의 하명수사가 실제 선거 판세를 뒤집는 데 영향을 줬다고 판단했다. 공소장을 보면 2018년 2월 3일(한국갤럽 여론조사) 김기현 40%, 송철호 19.3% 이던 후보자 지지율은 경찰 수사가 알려진 이후인 4월 17일(리얼미터 여론조사) 김기현 29.1%, 송철호 41.6%로 역전됐다. 그 해 6월 13일 실시된 선거에서 송철호는 울산시장으로 당선됐다.
검찰은 청와대가 민정수석실, 국정기획상황실 등을 통해 2018년 2월 8일부터 6·13 선거 전까지 넉 달 동안 18차례, 선거 이후로도 3차례 등 총 21차례 이같은 경찰 수사상황을 보고받아 챙긴 것으로 파악했다.
◇ 야당 후보 공약은 실패로 몰고, 당내경선 경쟁자는 매수
송 시장이 6·13 지방선거 때 내세운 '공공병원' 유치 공약도 청와대 내부의 조력으로 마련됐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검찰은 송 시장 측이 김 전 시장 측이 추진해 온 '산재모(母)병원' 공약을 누르기 위해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발표 연기를 부탁하고, 장환석 전 행정관이 이를 받아들이며 관련 내부 정보까지 제공한 것으로 파악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송 시장은 측근들과 2017년 9월쯤부터 울산 남구 한 오피스텔에서 이른바 '공업탑 기획위원회'라는 선거캠프를 구성한 뒤 선거 승리 전략을 짰다. 이 모임에서 송 시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친분이 두터운 점을 활용해 청와대에 선거운동 지원을 요청하자는 논의가 오갔다고 한다. 검찰이 확보한 송 전 부시장의 업무일지에는 ‘울산 물 문제, 산재모병원, 원자력해체센터 관련해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송 시장 측은 2017년 10월 11일 서울에서 장환석 당시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과 이진석 전 사회정책비서관 등 청와대 관계자들을 만나 산재모병원 예타 발표를 공공병원 공약 수립 이후로 늦춰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한병도 당시 정무수석 지시로 선거를 20일 앞둔 2018년 5월 24일 기재부가 산재모병원 예타 탈락 결정을 내렸고, 송 시장은 후보 TV토론에서 김 전 시장 측의 '공약 실패'를 공격했다.
송철호 캠프와 청와대가 '후보자 매수'에 나선 정황도 공소장에 담겼다. 한 전 수석의 경우 송 시장의 후보 확정을 지원하기 위해 당내경선 경쟁자이자 86학번 동기 모임으로 친분이 있던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게 공직 자리를 제안하며 불출마를 종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임 전 위원이 오사카 총영사, 과학기술부 차관 등 공직 자리를 희망해오다 청와대가 좀처럼 반응하지 않자 2018년 2월 13일 울산시장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열려던 것으로 파악했다. 한 전 수석은 하루 전인 같은달 12일 임 전 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울산에서 어차피 이기기 어려우니 다른 자리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공기업 사장 등 4자리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했고, 한 전 수석 지시를 받은 청와대 인사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알려 달라"고 임 전 위원에게 연락을 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앞서 송 시장 측도 2017년 10월 임 전 위원 측근을 통해 "대통령과 친구고 하니까 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면 공기업 사장이나 차관 등 자리를 충분히 챙겨줄 수 있다, 경선이 아닌 추대 방식으로 가게 해달라"며 회유한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