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많고 교육 환경 좋은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러나 집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아 집값이 오른다. 한국만의 고민은 아니다. 최근 유럽 도시 곳곳에서 집값과 임대료 급등으로 인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영국 런던에선 월세를 아끼려고 배에서 사는 이들이 늘고, 독일 베를린에선 임대료 5년 동결 정책까지 내놓았다. 두 탐험대원이 런던·베를린을 찾아 이들 도시 이야기를 들었다.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역에서 5분쯤 걷자, 폭이 10여m인 리젠트 운하가 보였다. 수로(水路)를 따라 양옆으로 작은 배 수십 척이 정박해 있었다. 배 창문엔 대부분 커튼을 쳤다. 갑판엔 석탄 포대나 화분·식료품 상자가 놓였다. 사람이 나와 빨래를 널거나 배에 물을 채우기도 했다. 운송용 배가 아닌 거주용 '집'이었다.
부동산학을 전공하는 나는 세계 각지 주택 문제에 관심이 많다. 런던은 집값과 임대료가 몹시 비싼 도시 중 하나다. 일부는 비싼 임대료 탓에 땅을 포기하고 배를 띄워 그 안에 살기도 하는데,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흔히 '내로 보트(narrow boat·폭이 좁은 배)'라 부르는 '주거용 배'는 10년 전까지 런던에 2000척 정도 있었지만 지금은 5000여 척으로 늘었다. 비영리 단체 '커낼앤드리버 트러스트'(CRT)는 2022년까지 배가 6700척으로 늘어나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런던의 보트족(族)을 만나 그들의 생활과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작지만 필요한 시설 모두 갖춘 '집'
지난달 20일 리젠트 운하에서 만난 포지(30)의 집은 폭 1.5m, 길이 10m 정도 되는 흰 배였다. 갑판에서 안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 바로 왼쪽에 화장실이 보였다. 포지는 "샤워 시설이 없어 근처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씻는다"며 웃었다. 작은 배 안에 나머지 집기는 다 갖춘 듯했다.
프리랜서 촬영 감독으로 일하는 그는 석 달 전 이 중고 배를 2만2000파운드(약 3400만원) 주고 샀다. "돈이 (보통 주택보다) 훨씬 덜 들어 좋아요. 2주마다 배를 옮겨야 한다는 점은 약간 귀찮지만요." 수로를 관리하는 CRT는 내로 보트를 2주마다 한 번씩, 2.4㎞ 이상 이동하도록 하고 있다. 보트를 한 곳에 대 놓으려면 한 해에 1만~1만2000파운드를 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이가 2주마다 한 번씩 옮겨 다닌다.
런던의 주택 가격과 배에서 사는 비용을 비교해 보면 포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배 값은 보통 2만~2만5000파운드 정도고 매월 운하 이용료(70파운드)·보험료(20파운드)·연료비 등을 포함해 200파운드 정도가 들어간다. 배를 사기 싫으면 한 달에 300파운드 정도를 내고 빌려 써도 된다. 난로에 석탄을 때서 난방하고 전기는 태양광발전으로 만들어 쓴다. 500파운드 정도(배 빌릴 경우)면 살 만하다. 땅 집을 빌리려면 원룸만 해도 월 900파운드(런던 평균)가 들어간다.
◇"아파트 절반 비용으로 배에서 산다"
내로 보트 거주자 중 평생을 배에서 보내겠다는 이는 많지 않았다. 배에서 살며 돈을 모아 땅으로 이사하는 식으로, 여건에 따라 물과 땅을 오가겠다고 이야기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몇 옮긴다.
"저는 12년째 배에서 살고 있어요. 회계사로 30년 일하다 해고당하고 나서 임대료가 비싼 집에서 나와야 했지요. 퇴직금으로 배를 사서 물 위의 삶을 시작했어요."(데이브·58세) "친구가 살던 배를 얻었죠. 런던 도심의 비싼 월세를 낼 필요가 없고 짜증 나는 이웃을 견디지 않아도 되니 좋네요. 이웃이 싫으면 '집'을 들고 옮기면 되니까!"(태미·28세) "4년 전 이혼하면서 전처에게 집을 주고 나왔어요. 저는 음악가인데 방음 잘 된 아파트를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공연 때문에 집을 비울 때는 에어비앤비(숙박 공유 플랫폼)를 통해 배를 빌려주고 돈을 받기도 합니다."(데이비드·56세)
이들이 내로 보트를 선택한 이유가 돈만은 아닌 듯했다. 자유롭게, 자연을 즐기며 방해받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장점도 이들을 배로 이끈 이유였다. 집값 상승으로 고민하는 서울 사람들도 한강에 배를 띄우고 사는 날이 올까. 런던대 도시계획학과 피터 비숍 교수는 "내로 보트를 낭만적으로 보지는 말라"고 했다. "투기 때문에 집값이 올라갑니다. 그린벨트로 묶인 곳이 많아 집 지을 땅은 부족하고요. 이런 이유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땅에서 밀려나 배 위에서 삽니다. 이런 도시를 성공했다 말할 수 있을까요." 런던 이야기로 들리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