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진자가 거주한 아파트에서 배기관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나오자 같은 아파트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는 일이 발생했다. 공기 중 떠다니는 미립자로 감염되는 '에어로졸 전염' 가능성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에어로졸 전염은 침방울로 인한 비말 전염과 달리 같은 공간에서 숨만 쉬어도 전염될 수 있다.

홍콩에서 긴급 대피 조치를 취한 이유는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때의 악몽 때문이다. 당시 홍콩의 한 아파트에서만 에어로졸 전염으로 300명 넘게 사스에 걸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한 폐렴의 에어로졸 전파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11일 새벽 홍콩 보건 당국과 경찰이 칭이(靑衣) 지역 홍메이(康美) 아파트 주민 110명을 대피시켰다고 홍콩 밍바오 등이 보도했다. 전날 우한 폐렴 감염이 확인된 이 아파트의 3층 주민이 지난달 확진 판정을 받은 13층 주민에게 감염됐을 가능성에 따른 조치다. 새로 감염된 주민(여·62)은 307호, 지난달 30일 감염돼 격리된 환자(75)는 1307호 주민이었다.

전염병 권위자인 위안궈융(袁國勇) 홍콩대 교수는 현장 답사를 마친 후 "이 아파트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파이프와 배기관은 연결돼 있는데, 3층 환자 집의 관(管) 연결 부위가 벌어져 있어 공기 중의 바이러스가 3층으로 유입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같은 라인의 모든 세대가 한 개의 배설물 처리 파이프에 연결돼 있다. 홍콩 환경국도 이날 "배기관에서 새어나온 바이러스가 환풍기 등으로 인해 확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홍콩 언론은 이번 사건을 두고 '제2의 아모이가든 사태가 우려된다'며 대서특필하고 있다. 2003년 홍콩에서는 사스 증상을 보인 남성이 3월 14일과 19일 아모이가든 아파트의 동생 집 화장실을 사용했다. 이후 27일간 이 아파트에서 321명이 사스에 걸렸고, 이 중 42명이 사망했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스에 걸린 남성이 화장실을 쓰고 물을 내리면서 바이러스를 포함한 오염수가 아랫집 변기·하수구와 이어진 관으로 흘러들어 갔고, 다시 공기 중에 전파가 가능한 미립자(에어로졸)로 변형돼 환풍기를 통해 아파트 전체로 퍼졌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한 폐렴의 에어로졸 전염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 "에어로졸은 기관지 내시경 등 의료 처치를 할 때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공기 전파 환경이 조성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