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꽝찌성 빈린현에 사는 레 꽝 중씨는 안과 진료를 위해 지난달 보건소를 찾았다. 빈린은 성도(省都) 동하시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주민들은 안과 진료는 하노이 같은 큰 도시 사람들이나 받는 고급 진료라고 여겼다. 베트남에선 녹내장과 당뇨망막병증 등으로 실명하는 노인과 장년층이 적지 않다.
보건소장인 의사 레 득 키엔씨는 익숙한 듯 스마트폰을 꺼낸 후 작은 망원경 비슷한 기기를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에 꽂았다. 키엔씨가 꺼낸 기기는 '아이라이크(EYELIKE)'라는 눈 검사 도구로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의사가 아이라이크를 레 꽝 중씨 오른쪽 눈에 밀착시키자 스마트폰 화면에 망막과 혈관이 나타났다. 1차 의료기관인 지역 보건소에서 이렇게 촬영된 이미지는 스마트폰을 통해 꽝찌성 내 2차 의료기관으로 전송돼 안과 전문의 판독을 거친다.
베트남에선 2017년부터 모바일 기술을 활용해 현지인들의 실명을 막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국제개발원조(ODA) 사업의 하나로 연세의료원 국제 실명예방사업팀이 주축이 된 '프로젝트 봄(BOM)'과 삼성전자의 기술 지원이 합쳐진 결과다. 베트남 안과 의사 수는 인구 100만명당 14.7명으로 한국(64.0명)의 23% 수준이다. 그나마 대도시에 몰려 있어 시골에선 안과 진료가 어렵다. 아이라이크 이전에도 안저(眼底) 카메라는 있었지만, 가격이 3000만~5000만원에 달해 지역 보건소가 구매하기 어려웠다.
아이라이크는 두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 렌즈와 간단한 소프트웨어 설치를 통해 가격을 기존 안저 카메라의 100분의 1 수준인 30만~50만원 선으로 낮췄다. 이를 통해 베트남 지역 보건소에 40여대를 보급했다. 카메라만 장착하면 모든 과정은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이뤄진다. 사진을 찍고 전용 앱을 통해 이미지를 큰 병원으로 전송할 수 있다. '프로젝트 봄'은 2017년부터 꽝찌성과 타이응우옌성 등 베트남 주민들 을 대상으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만 1만8000건의 검사를 진행했다.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 증상 발견만 1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프로젝트 봄 자문위원 윤상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베트남 현지에서 진료하며 아이라이크를 개선했다"며 "베트남 외의 다른 나라에서도 현지 사정에 맞는 기기를 통해 안과 진료를 이어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