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폐렴 치료를 받던 환자가 십이지장 궤양이 터져서 대량 출혈 쇼크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국내 최초로 음압 격리 수술실에서 이뤄진 응급 수술로 극적으로 살아났다. 이 과정은 여러 병원의 의료진이 고비 고비마다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채 응급 처치를 하며 생명의 끈을 이어간 한 편의 메디컬 드라마였다.

◇대량 출혈성 쇼크를 막아라

경북 경산에 사는 K(73)씨는 지난달 28일 코로나 감염 확진 판정을 받았다. 흉부 엑스레이에선 이미 폐렴 증세가 진행된 게 보였다. 그는 포항의료원으로 이송돼 음압 병실에 입원했다. 이틀 뒤인 3월 1일 낮, 많은 양의 혈변(대변에 피가 섞여 나옴)이 나왔다. 혈압이 뚝뚝 떨어지고, 빈혈 수치가 곤두박질쳤다. 몸 안의 소화기 어딘가에서 피가 새고 있다는 뜻이었다.

3일 서울대병원 중환자용 앰뷸런스 이송 서비스팀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장출혈을 일으킨 환자를 태우고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K씨가 중환자 처치가 가능한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돼 음압 격리 병실로 들어간 시간은 같은 날 밤 11시였다. 환자의 헤모글로빈 수치는 포항의료원 입원 당시 정상이던 15.7(mg/dl)에서 6까지 떨어졌다. 대량 출혈로 인한 극도의 빈혈 상태였다.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정치량 교수팀은 혈액과 적혈구 등을 1만㏄ 이상 수혈하면서 분투했다. 그런데 갑자기 환자의 입에서도 피가 쏟아져 나왔다. 자정을 넘긴 2일 오전 1시쯤 위장 내시경 장비가 음압 병실로 들어오고, 소화기내과 의료진이 긴급 호출됐다. 이들은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채 내시경을 넣었고, 동전 크기의 십이지장 궤양을 발견했다. 그 안에서 동맥 두 개가 찢어져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크기가 커서 내시경 시술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의료진은 일단 지혈제와 혈압 상승제를 투여하고, 수혈을 이어갔다. 인공호흡기도 달았다. 3일 낮, 십이지장 궤양을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출혈성 쇼크 진단이 나왔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환자를 수술하려면 일반 수술실에서 해야 하고, 바이러스 오염 소독 때문에 수술실이 며칠간 폐쇄될 수밖에 없었다. 수술 대기 환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상황이었다. 음압 수술실이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에 SOS(구조신호)를 쳤고, 중앙의료원의 응답은 이랬다. "빨리 이리로 보내라."

◇인공호흡기 이송·음압수술실 동원

하지만 인공호흡기를 단 감염병 환자의 응급 이송이 문제였다. 이번엔 서울대병원의 중환자용 앰뷸런스 이송 서비스(SMICU)팀이 출동했다. 오후 3시쯤 최세원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와 응급구조사 2명이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삼성서울병원 음압병실에 나타났다. 환자가 내쉬는 공기 속 바이러스가 외부로 나가는 것을 차단하는 이송용 음압 격리 운송장치 안에 K씨를 실은 채 병원을 빠져나와 음압 설비가 완비된 앰뷸런스에 태웠다. 의료진은 이송 중 인공호흡기·중심정맥관·동맥압 감시·약물주입펌프를 설치하고 살피면서 K씨를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옮겼다.

응급수술은 밤 9시부터 시작됐다. 국립중앙의료원 외과 박종민 전문의 응급수술팀이 궤양이 있는 십이지장을 일부 잘라내고 나머지 십이지장을 소장으로 이어주는 수술을 3시간만에 마쳤다. 수술에 참여한 외과·마취과·간호사 등 모든 의료진이 레벨D 방호복을 입고 땀을 흘렸다.

K씨는 9일 현재 더 이상의 장출혈은 없다. 헬모글로빈 수치도 10 이상으로 회복됐다. 인공호흡기도 떼어내 일반 산소 투여만 받고 있다. 조준성 국립중앙의료원 호흡기내과 실장은 "폐렴 증세도 좋아져 안정적으로 회복되고 있다"며 "코로나 감염 환자를 국내서 처음으로 음압 수술실서 응급수술로 살려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