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건·의료업계에 만연한 관료주의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발병 초기에 신속한 진단 검사와 방역 대응을 할 수 있었던 기회를 잃게 만들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비판했다.
10일(현지 시각) NYT는 시애틀 독감 연구소(SFS)의 전염병 전문가 헬렌 주 박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전했다.
주 박사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독감 연구의 일환으로 워싱턴주 주민들의 표본을 검사하고 있던 SFS는 자체 검사를 통해 우한 코로나의 지역사회 확산세를 감시할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지난달 10일 SFS는 우한 코로나 검사를 합법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승인해달라고 보건당국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주 박사는 "미국 보건당국의 관료주의 때문에 우한 코로나를 제때 검사할 기회를 놓쳤다"고 밝혔다.
지난달 16일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연구소(SFS)가 자체적인 검사를 하고 싶으면 식약처(FDA)의 승인을 받으라"고 답했다. 그리고 FDA는 "SFS가 임상 실험실로의 용도 변경을 인증받지 않았기 때문에 승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NYT에 따르면 임상 실험실로의 용도 변경 승인을 받는 데는 수개월이 걸린다.
이후로도 주 박사는 거듭 승인 요청을 했지만 매번 거절당했다. 그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발생하기를 기다리면서 가만히 앉아있는 기분이었다"며 "우리에겐 도울 능력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SFS의 승인이 지연되는 동안 우한 코로나는 미국 내 최소 36개주와 워싱턴DC로 확산됐다.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지금도 우한 코로나 검사에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NYT는 "한 세기 동안 유례없던 규모의 공중보건 비상사태에 직면한 미국은 민첩하게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SFS의 과학자들도 "검사를 허용했다면 더 빨리 보건당국에 알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SFC는 지난달 25일 정부 승인 없이 우한 코로나 검사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가까운 과거에 여행 기록이 없던 시애틀의 청소년이 양성반응을 보였다. 우한 코로나의 지역사회 확산이 이미 미국에서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9일 보건당국은 승인받지 않은 SFS의 검사를 중단하라고 통보했다.
지난 3일 미국에서 확진자 급증하기 시작하자 보건당국은 민간과 대학 연구소가 FDA 승인을 받아 자체적으로 검사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관료주의 때문에 승인 과정이 더디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내 대학 병원 관계자들은 "우한 코로나가 FDA보다 빠르다" "FDA가 승인을 위해 대학 병원이 갖고 있지 않은 양성 표본을 요구한다" "자료를 우편으로 보내라고 요구한다"고 호소했다.
현재까지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우한 코로나 검사를 받았는지는 확실치 않다. CDC는 자체적으로 검사 키트를 개발해 발병 초기부터 8500여개의 표본을 채취해 검사했다. 한 사람으로부터 여러 표본이 채취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검사받은 사람의 수는 이보다 확실히 적다. 게다가 이마저도 결함이 발견돼 교체 중이다.
미국 내 최대 확산 지역인 워싱턴과 뉴욕을 제외한 5개 주의 보건소들만 새로 교체받은 상황이다. NYT는 비슷한 시기에 첫 확진자가 발생해 지난달 말부터 하루에 1만여명을 검사할 역량을 가진 한국과 비교하며 미국의 낮은 검사 역량을 비판했다.
NYT는 "관료주의가 전국적으로 신속하게 해야 하는 검사의 진행을 얼마나 방해했는지를 SFS의 사례가 보여줬다"며 "SFS의 검사 중단은 미국이 우한 코로나 사태 초기에 더 광범위한 검사를 실시할 수 있었던 기회의 상실이다. 이후 보건당국은 어둠 속에서 일하게 됐다"고 했다.
한편 이날 앨릭스 에이자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왜 미국이 한국처럼 한꺼번에 많은 검사를 진행하지 못하느냐는 지적에 "그것은 능력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