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조 정치부 기자

미국 국무부의 연례 인권보고서가 지난 11일 발간됐다. 미 국무부가 해외 공관 등 각종 정보망을 통해 2019년 한 해 동안 각국의 주요 인권침해 사례를 자체 조사·분석한 결과가 담겼다. 각국의 인권 수준을 알려주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참고서'다.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언론 매체는 이를 두고두고 열람·인용한다.

보고서는 '대한민국 편' 언론의 자유 부문에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변인이 문재인 대통령을 북한의 '수석 대변인'이라고 표현한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블룸버그 기자를 비난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대변인은 또 비슷한 취지의 표현을 한 뉴욕타임스 기자도 거론했다"고 했다. 보고서는 이 사례를 '정치적 살해·고문' 같은 최악의 인권 탄압 부문 다음 차례로 다뤘다. 그만큼 언론의 자유가 정치권력에 의해 침해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당초 블룸버그 등 외신 기사는 2018년 9월에 실렸다. 그땐 말이 없더니 작년 3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연설 때 이 기사를 인용하자 당시 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이 당 논평을 통해 블룸버그·뉴욕타임스 기자들에 대한 공개 비판에 나섰다. "국가원수 모욕" "매국" 같은 원색적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이 대변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홍익표 의원과 유튜브에 출연해 기자들 실명을 거론하며 "검은 머리 외신 기자"라는 인종차별적으로 인식될 만한 발언을 했다. 기자들의 성장 배경 등을 공개해 인신공격했다. 다른 내·외신 기자들에게 "너희도 우릴 건드렸다간 이렇게 조리돌림당하니 적당히 닥치고 있어라"라는 공개적인 협박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보고서를 읽고 나서 해당 블룸버그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받지 않았다. 알아보니 그는 1년 가까이 '휴직 상태'였다. 거대 정당의 조직적 공격,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의 신상 털기와 협박 전화·문자에 시달려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기자는 여성으로서 차마 듣지 못할 욕설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작년 가을 어떻게든 어려움을 딛고 다시 일하고자 잠시 복직했다. 하지만 여전히 귓가에서 그들의 거친 발언이 들리는 것 같았다. 분하고 답답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결국 그는 마음고생이 심해져 쓰러졌고, 다시 휴직에 들어가야 했다. 그는 아직도 홍 의원과 이 대변인에게서 어떤 사과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홍 의원과 이 대변인은 미 국무부 보고서에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로 자신들이 지목된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아니면 알고도 '그런 것 따위야'라며 모른 채 무시하는 걸까? 인권과 언론의 자유, 그리고 부끄러움과 거리가 먼 이들은 이번 4·15 총선에서 보란 듯 여당의 공천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