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우리 또래에게 신문은 '꿈의 배달부'였다. 나는 소년조선일보(어린이조선일보의 전신)를 보며 자랐다. 커다란 신문을 펼쳐 놓고 잉크 향을 맡으며 읽을거리를 찾아나가는 건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흥미로운 공상과학 연재만화와 모험 이야기, 신기한 발명품 소개 기사 등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당시엔 신문이 지금의 인터넷과 같은 정보의 바다였다. 그때의 나는 소년조선일보를 통해 세상을, 미래를 보고 있었다.
조부(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께서도 생전에 "나는 '신문대학'을 나왔소"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신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셨다. "신문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고 하셨다. 늘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부터 꼼꼼히 정독하시는 게 첫 번째 일과였다. 특히, 사설은 빼놓지 않고 보시며 그날그날 세상의 가장 중요한 흐름을 파악하셨고 가끔은 내게도 의견을 묻곤 하셨다.
조선일보가 올해 100년의 역사를 썼다. 사회에 울림을 준 조선일보의 캠페인들이 기억난다. 1995년 펼친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캠페인, 1998년 외환위기 당시'다시 뛰자' 캠페인은 우리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위기를 극복할 힘을 주었다. 대한민국이 문화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최근에는 특히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캠페인 기사를 유익하게 보고 있다.
조선일보의 명(名)칼럼들을 항상 챙겨 읽는다. '만물상'은 세상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창이다. 지금은 연재가 끝났지만 '이규태 코너'는 읽는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줬다. 미래를 준비하는 조선일보의 진지한 고민 역시 공감하며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조선일보 경영진이 올해 초 글로벌 혁신 아이디어의 경연장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국제가전박람회(CES)를 직접 둘러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조선일보의 가장 큰 미덕은 진실함과 담백한 보도가 아닐까 싶다. 변화의 흐름을 앞서서 파악해 미래 세대에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나침반 같은 역할도 계속 해줬으면 한다. 특히 우리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져 있는 지역과 국가의 세세한 소식과 정보까지 더 관심을 갖고 전달해 줬으면 좋겠다. 10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조선일보가 앞으로도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담는 그릇으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이어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