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에는 갑옷 입고 말 위에서 창을 던지는 무사의 전투 장면이 있다. 무사를 태운 말도 철갑옷으로 중무장을 했다. 목부터 엉덩이까지 비늘갑옷을 두른 채 장수를 태우고 맹렬하게 돌진하는 모습이다.

벽화 속 그림으로만 짐작할 수 있었던 삼국시대 개마무사(鎧馬武士·철갑옷으로 무장한 말을 탄 무사)의 갑옷 세트가 출토된 건 지난 2009년. 경주 쪽샘지구에 있는 무덤에서 5세기 신라 장군의 말 갑옷 일체가 나와 학계를 흥분에 빠뜨렸다. 말 갑옷은 목·가슴, 몸통, 엉덩이 부분 순서로 정연하게 깔려 있었고, 그 위에 무덤 주인공인 장군의 갑옷이 포개져 있었다. 당시 이건무 전 문화재청장은 "말 얼굴가리개와 말 갑옷, 무사의 투구와 찰갑 등이 완전한 세트로 나온 건 처음"이라며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서만 전해지던 삼국시대 철갑 기병의 모습을 완벽히 보여주는 실물 자료"라고 감탄했다.

신라 장군의 말 갑옷, 다시 태어나다

1600년 전 군대를 호령하던 신라 장군의 말 갑옷이 드디어 복원됐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주 쪽샘지구 C10호 무덤에서 출토된 말 갑옷의 보존 처리를 끝내고 10년간의 연구 성과를 정리한 보고서를 냈다"고 7일 밝혔다. 발굴 순간부터 보존 과정, 복원 실험과 재현품 제작까지 4000일간의 땀과 노력이 생생히 담겼다.

연구소는 긴 세월 흙더미에 파묻혀 폭신한 담요 같았던 갑옷 유구를 그대로 떠서 옮긴 뒤 보존 처리를 진행했다. 땅속에 단단히 박힌 갑옷 조각을 분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28t에 이르는 주변 토양을 통째로 들어냈고, 퍼올린 유구를 뒤집어 흙을 걷어낸 후 작업실로 옮겼다. 분석 결과 말 갑옷은 총 740장의 철조각으로 구성돼 있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종훈 소장은 "작은 철편에 구멍을 뚫어 가죽끈으로 연결한 것"이라며 "어떻게 철편을 엮어야 말이 움직일 때 부담을 느끼지 않는지 착장 실험도 진행했다"고 했다.

철갑 두르고 전장을 누빈 전투마가 조랑말?

신라 전투마의 어깨높이는 대략 120~136㎝. 현재 천연기념물인 제주 조랑말과 비슷한 크기다. 철갑을 두르고 적진을 향해 달린 장군의 말이 겨우 조랑말이라니? 김헌석 특별연구원은 "흔히 전투마 하면 연상되는 유럽 기마병의 육중한 말과는 달리 몽골 계통의 아시아 말은 골격이 크지 않은 중형마"라며 "삼국시대 당시엔 우량한 품종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말 갑옷의 무게는 36㎏. 장수가 60㎏이라고 가정한다면, 그가 입은 갑옷까지 이 말은 최소 110㎏ 이상의 무게를 견디며 달려야 했다는 얘기다. 실제 입은 게 아니라 장례를 위해 묻은 의례용 갑옷은 아닐까. 박성진 연구관은 "어릴 때부터 계속 갑옷을 입히며 훈련해온 전투마라면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무게"라고 했다.

연구소는 이 같은 성과를 토대로 말 갑옷 재현품〈사진〉을 완성했다. 이종훈 소장은 "말 갑옷의 구조, 연결 기법과 착장 상태까지 삼국시대 마갑 연구를 한 단계 상승시킨 획기적 자료"라고 했다. 오는 6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말 갑옷 재현품과 함께 마갑과 마구류 일체를 전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