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늦은 밤 프리랜서 A(남·33)씨는 친구들과 경기도 일산 S나이트클럽에 들어섰다. 그로부터 1시간 전, 그는 친구 두 명과 서울 홍대 입구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취기가 돌면서 오랜만에 춤을 추러 가기로 친구들과 '의기투합'했다. 그러나 단골 나이트클럽이 영업하지 않았다. 알던 웨이터들에게 문을 연 곳을 수소문한 끝에 일산 S나이트클럽이 오랜만에 영업을 재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택시를 타고 출발하면 교통 체증이 없는 밤에는 20분이면 도착한다. A씨는 S나이트클럽에서 새벽 1시 넘도록 모르는 사람들과 붙어 앉아 있었다.
서울시는 8일 시내 전역 유흥업소 422곳에 영업 중지 명령을 내렸다. 강남 한 룸살롱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나와 내린 조치다. 그러자 유흥업소를 즐겨 가던 사람들이 교외(郊外)로 눈을 돌리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성남시 분당, 멀게는 인천과 대전까지 빠져나가는 움직임도 있다. 서울을 누른 결과 경기도가 부풀어 오르는 일종의 '풍선 효과'가 일어나는 셈이다.
본지 기자가 9일 새벽 찾은 일산 S나이트클럽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이 지켜지는지 따지기가 무색했다. 남녀 20여 명이 홀에서 뒤엉켜 춤을 추던 중 손을 잡더니 이내 서로 껴안았다. 웨이터들은 손님 손을 잡고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의자에 앉히는 '부킹'에 바빴다. 한 테이블에서 여자가 사과 한 조각을 집어 한입 베어 물고 나머지를 그릇에 내려놨다. 그러자 옆에 앉은 남자가 여자를 보고 싱긋 웃더니 남은 조각을 자기 입에 넣었다. 15분 뒤 이 남자는 다른 여자와 같이 앉아 있었다.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뒤엉켜 있는 남녀도 있었다. B(여·29)씨는 "S나이트클럽이 오랜만에 문을 열었다는 소식에 서울에서 친구들과 왔다"며 "주말에는 다른 곳으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나이트클럽에서는 일반적으로 모르는 남녀가 만난다. 혹시 무증상 감염자라도 있었다면 확산 가능성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접촉자를 추적하기도 쉽지 않다.
단속 인원은 보이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달 22일부터 지역 경찰서와 시·구청 직원을 현장으로 보내 집단 감염 위험이 큰 대형 시설에서 '마스크 착용' '사람 간 간격 2m' 등을 지키는지 단속하고 있다. 서울시내 일부 교회가 그 지침을 어겼다는 이유로 집회중지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이곳에선 100여 명이 밀착해 춤을 추고 유흥을 즐기는 데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날이 밝은 뒤 S나이트클럽에 대한 관청의 점검표에는 '단속 결과 이상 없음'이라고 적혔다. 담당 공무원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는 "오후 9시 50분쯤 다녀왔을 때는 사람이 많지 않아 특별히 조처할 게 없었다"고 했다. S나이트클럽을 관할 구역으로 둔 고양시 일산동구청 관계자는 "동구에는 S나이트클럽뿐 아니라 유흥업소가 많아 9명뿐인 단속 조(組)로 모두 감시하기는 쉽지 않다"며 "오늘은 사람이 많다는 밤 12시에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대형 유흥업소 영업정지 명령을 내린 뒤 유흥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서울 밖 오픈 예정 업소 목록'이 공유되고 있다. 운영 중이거나 곧 재개장할 예정인 교외 유흥업소 정보가 담겨 있다. 9일 유흥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역밤'에는 '대전 S나이트가 월요일부터 열고 있습니다. 오늘 갈 예정입니다' '인천 G 감성주점(춤추는 술집)은 아직 열지요?' 등 게시물이 올라왔다. 유흥업소 관계자가 직접 글을 올리기도 한다. 한 이용자는 자신을 분당 G나이트클럽 웨이터라고 소개하며 "'불금'에 드디어 오픈합니다. 많이들 놀러 오세요"라고 홍보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정부의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 시행 뒤 경기도가 2주 동안 단속으로 잡아낸 방역 지침 위반 시설은 전체의 12.6%(3만7803곳 중 4777곳)뿐이었다. 위반 행위가 심각해 사실상 '영업 정지'를 시킨 곳은 노래연습장 2곳, 유흥주점 1곳이 전부였다.
하지만 서울 시내 술집 종업원 감염 사례는 잇달아 나오고 있다. 8일에는 용산구 이태원로의 한 바(bar)에서 종업원 1명이, 서초구 서래마을 술집에서도 종업원 1명과 손님 3명 등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해당 구청이 각각 밝혔다.
업소가 문을 닫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단속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산동구청 관계자는 "위반 사항을 잡아내려면 업소마다 공무원들이 영업시간 내내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고 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유흥업소 안에서 사람들이 2m 거리를 두는지 지켜보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