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거장들의 걸작 건축물을 인터넷으로 둘러보는 콘텐츠가 역병의 시대를 맞아 주목받고 있다. 외출 금지, 자가 격리로 관람객들의 발이 묶이자 간접적으로나마 공간을 경험하게 해주는 동영상, 360도 영상, 가상현실(VR) 같은 콘텐츠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이다. 공간의 느낌을 입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 건축계에서 주목받아온 신기술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계기로 빛을 발하는 모양새다.
미국의 건축 영상 제작사 '스피릿 오브 스페이스'는 프랑스 리옹 근교의 라 투레트 수도원 내·외부를 촬영한 영상을 최근 인스타그램과 동영상 공유 사이트 비메오를 통해 공개했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1887~1965)의 만년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수도원은 평소 운영되던 가이드 투어가 중단된 상황. 하지만 영상은 투어 관람객들에게 개방되지 않는 수도사들의 독방까지 꼼꼼하게 비춘다.
르코르뷔지에는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대표작 롱샹 성당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빛으로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는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빛 대포'로 통하는 3개의 굴뚝 모양 천창을 통해 자연광이 컴컴한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압권. 날것의 잿빛 콘크리트가 노출된 성당 내부와 원색으로 칠한 빛 대포의 내벽, 쏟아지는 빛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의 작품 중 일반에게 개방되던 12곳도 코로나로 폐쇄되면서 가상 관람 대열에 합류했다. 라이트는 미국 건축이 유럽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진 건축가다. 또한 자연과 어우러지는 융합의 건축을 추구했다. 온라인 공개되는 작품에는 폭포 위에 지은 주택 '낙수장'과 종교 건축의 걸작으로 통하는 '유니티 템플' 같은 대표작이 포함됐다. 이달 2일(현지 시각)부터 6주간 매주 목요일에 12곳의 건축물들이 각각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다른 건축물을 영상으로 소개하는 방식이다. 프랭크로이드라이트 건축물 관리단의 바버라 고든 단장은 "지금과 같은 때에도 우리는 아름다움과 영감을 경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명 건축 웹진 아키데일리는 구글의 화상 지도 서비스 스트리트뷰로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거장들의 주택 작품 10곳을 골라 소개했다. 바르셀로나의 관광 명소인 안토니 가우디의 '카사 바트요', 프리츠커상 초대 수상자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 등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과 시스티나 성당 등도 가상현실(VR)이나 360도 영상으로 가상 관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관람객 인파에 치이지 않고 호젓하게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올려다본다 생각하면 꿩 대신 닭이라고만 할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