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지만 지금 시간에는 알코올 주문이 안 됩니다.”

저녁 7시 5분. 어렵사리 영업하는 식당을 찾아 들어가 돈까스 정식과 생맥주 한 잔을 시켰더니 종업원이 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평소라면 반주 손님이 많을 시간대인데도 대부분 테이블 위에 물만 놓여 있었다. 대화 중 바에 앉은 손님이 갓 나온 듯 찰랑거리는 맥주잔을 입에 댔다. 기자의 눈빛을 읽었는지 종업원이 바로 덧붙였다. “오늘의 마지막 맥주 주문이었습니다.” 긴급사태 조치에 따라 일본 도쿄에서 음식점 ‘영업 단축’이 처음 시행된 지난 10일 겪은 일이었다.

도쿄도(都)는 지난 8일 긴급사태 조치가 발령되고 이틀 후 도내 음식점(술집 포함)에 ‘술을 파는 건 오후 7시까지, 영업시간은 오후 8시까지’로 단축 영업해 달라고 요청했다. ‘강제 사항’이 아니라 ‘요청’인 건 전과 같았는데, 긴급사태 이후 나온 조치라 실제로 따르는 업소가 대폭 늘었다. 돈까스 집 점원 역시 “도청에서 검사를 나오진 않았는데 상황이 심각하니까 요청에 맞추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17일 밤 도쿄 신주쿠 골든거리 점포 대부분이 문을 닫은 모습.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 이야기의 배경으로 알려진 곳이다. '음식점 영업은 8시, 술 판매는 7시'라는 영업 제한 요청 때문에 대부분 점포가 '심야 영업'을 포기했다.

긴급사태가 발령된 후 열흘. 아예 자체적으로 임시 휴업을 하거나 테이크아웃 전문으로 전환해버린 곳도 상당수다. 밤 11시까지 영업했던 맥도날드나 24시간 손님을 받았던 일식 패스트푸드점 나카우도 저녁 8시 이후엔 포장 주문만 가능해졌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은 요즘 같으면 가게를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문 여는 시간이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로 설정돼 있는데 현재로선 영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심야식당 드라마의 배경으로 알려진 신주쿠구(新宿区) 골든거리(ゴールデン街)는 긴급사태 발령 후 사실상 암흑거리가 됐다.

여전히 도쿄도 내에서만 확진자가 하루에 100명 이상(전국 500명 안팎)씩 늘면서 음식점 뿐 아니라 사회 전체 분위기가 크게 가라앉아 있다. 마스크가 없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최고 수위다. 출퇴근 시간 인파 속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면 자석 N극과 N극처럼 재빨리 거리를 두는 모습을 자주 본다. 운동 삼아 동네를 한 바퀴 뛰고 나서 무심결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 앞에 선 적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는데도 멀찍이 서서 다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주민을 보고 ‘문제’를 깨닫고 옆으로 비켜선 뒤 먼저 보냈다. 얼른 주머니를 뒤져 마스크를 썼다.

스타벅스 같은 외국계 체인이나 일본 자국 프랜차이즈 카페가 장기 휴업 중이지만, 동네마다 소규모 카페 한두 군데 정도는 영업하는 곳이 있다. 대부분 100석 미만으로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금방 대기 줄이 생긴다.

17일 도쿄 고토구 한 카페 테이블에 '거리 두기를 위해 협력해달라'는 양해문이 붙은 모습. 위에는 곰인형이 놓여 있다. 카페 측에서 손님들이 밀착하지 않도록 사전 조치를 취한 것이다.

손님이 다닥다닥 붙는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기위해 긴급사태 후 아예 카페 측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도하는 곳도 생겼다. 테이블 위에 곰이나 토끼 인형을 올려놓고 ‘이 좌석은 사용하지 않는다. 객석간 거리 유지에 협력을 부탁한다’라고 써 놓거나, 나란히 놓여 있던 의자를 중간 중간 치워두는 것이다.

긴급사태 전과 비교해 다만 밤 산책로는 전보다 더 활기찬 느낌이다. 2~3월보다 기온이 올라 러너들이 달리기 좋은 환경이 된 데다 유동 인구가 적다고 생각해서인지 가족 단위 산책객도 크게 늘었다. 러너들에 유모차, 자전거, 스케이트 보드까지 등장한 저녁 시간 도쿄만(湾) 러닝 코스의 모습은 주말 낮과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행인 한 명 찾기 어려운 깊은 밤에도 명물 코스로 꼽히는 황거(皇居·일왕 거처) 주변에서만큼은 달리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일본 정부도 긴급사태를 발령했지만 산책이나 조깅은 금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걷기나 달리기로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일 밤 주오구(中央区) 올림픽 선수촌 근처를 뛰던 회사원 히라노(41)씨는 “바이러스를 막으려면 전보다 더 건강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퇴근 후 매일 달리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