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3달러'
21일 아침 잠에서 깬 원유선물 투자자들은 수직낙하한 서부텍사스원유(WTI) 5월물 차트를 보고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올 들어 끝을 모르고 추락하던 국제유가가 급기야 마이너스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17일 종가(18.27달러)와 비교하면 306%나 폭락한 수치로, 국제유가 선물가격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사상 처음입니다. '마이너스 유가'란 어떤 의미일까요? 더 중요한 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다섯 개 질문으로 짚어봤습니다.
◇Q1. ‘원유 선물’은 뭐고 ‘5월물’은 또 무슨 뜻인가요
‘원유 선물(先物)’이란 원유를 지금 당장 사고 파는 게 아니라 현재 시점에 정한 가격으로 특정일에 인도·인수하기로 약속하는 거래를 말합니다. 구매자와 판매자가 가격 하락이나 상승에 따른 손실을 회피하거나 줄이기 위해 선물 거래를 이용합니다. 5월물이란 인도·인수 시점이 5월이라는 뜻입니다. 원유 선물은 매달 결제 만기가 있으며, WTI는 매달 25일에서 3영업일 전이 만기입니다. 이번 5월물의 만기일은 4월 21일이 되는 거죠. 이날까지 원유 선물을 보유하고 있으면 원유를 인도받게 됩니다.
◇Q2. 왜 마이너스로 떨어졌나요
대부분의 원유선물 투자자들은 수천배럴의 원유를 인도받는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따라서 만기일이 다가오면 원유가 실제로 필요한 정유사나 항공사에게 팔아버리죠.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원유 수요가 급감하면서 원유를 사줄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항공편은 모두 취소됐고, 이동제한령으로 사람들은 집에 머물고 있으며, 원유를 사용하는 많은 산업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달 초 전세계 원유 생산국들이 석유 생산량을 하루에 1000만 배럴씩 감축하기로 합의했지만, 원유 수요는 하루에 3000만 배럴씩 감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싼 값에 사서 비축해두면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급이 넘치면서 저장시설도 꽉 차버렸습니다. WTI 주요 저장시설인 오클라호마 쿠싱 저장소의 저장용량은 이미 70%나 들어찼으며, 조만간 최대 용량에 도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투자자들이 만기일을 앞두고 인수 시점을 늦추기 위해 대거 6월물로 갈아타면서 5월물 가격이 폭락해버린 겁니다.
◇Q3. 그럼 원유 사면 돈 받을 수 있나요
원유가격이 -37달러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5월물 1배럴을 구매하면 37달러의 웃돈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은 맞습니다. 다만 만기일이 지나면 반드시 실물을 인수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비용의 운송비와 보관비를 부담해야 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원유 저장시설이 부족해지면서 초대형 유조선(VLCC)의 6개월 임대가격은 1년 전 하루 2만9000달러에서 10만 달러로 급등했습니다. 기름을 보관하기 위해 하루에 1억원 이상을 바다에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1회 운송 비용도 6배 오른 하루 15만달러에 육박합니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큰 거래가 되는 거죠.
◇Q4. 계속 마이너스 유가가 유지될까요
아닙니다. 마이너스로 가격이 떨어진 건 5월물에 한정됩니다. 같은 날 WTI 6월물 가격은 배럴당 21.04달러에 거래되며 20달러 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5월물 만기가 끝나면 국제유가가 다시 20달러 선을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마이너스까지 가지 않더라도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유가 하락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RBC 캐피탈마켓의 헤리마 크로프트 글로벌 원자재 전략 대표는 “현시점에서는 원유시장의 어떠한 안도 요인을 찾아보기 힘들며, 단기적으로 유가에 대해 매우 우려스럽다”고 전망했습니다.
◇Q5. 원유상품 이제 투자해도 될까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유가, 이제 올라갈 일만 남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가 전망이 불투명한만큼 아직까지 원유 ETN(상장지수증권)과 같은 파생상품 투자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최근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원유 ETN에 몰리면서 실제 유가 움직임과 관계없이 ETN 주가가 급등해버리는 괴리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괴리율이 커지면 증권사는 주식을 추가 상장해 실제 가치 근처로 시장가격을 조정합니다. 비싸게 산 투자자들은 손해를 볼 우려가 있다는 뜻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원유 수요 감소 우려가 여전한 만큼 유가 단기 방향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