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는 이번 주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위치 추적 앱(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남부에 있는 인구 14만명의 와이트 섬에 시범 도입한다. 이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하면 사용자 위치 정보가 고스란히 정부의 중앙 서버에 저장된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동선을 파악하고, 접촉자를 가려내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 역할을 하는 영국 정부 기관인 국립보건서비스(NHS)가 제작한 앱이다. 이달 말에는 전국으로 확대한다. 영국 내 코로나 사망자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3만명을 넘어서자, 영국 정부가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전 국민 대상 위치 정보 수집에 나선 것이다. 앱 설치가 의무는 아니지만, 영국 정부는 "여러분의 생명과 지역사회를 위해 앱을 다운 받으라"며 사실상 앱 사용을 강제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세계 각국이 전례 없는 국민 감시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인도 등 아시아 국가뿐 아니라 프라이버시를 중시해온 유럽 국가들까지 개인 위치 데이터를 중앙정부가 저장·관리하기 시작했다. 과거 개인 위치 정보 수집은 엄격한 법적 절차에 따라 아주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감염병 저지라는 명분으로 언제든 가능하도록 법 규정을 바꾸거나 새로운 추적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그린 '빅 브러더'(거대 권력자)의 그림자가 코로나를 빌미로 세계 곳곳에 드리우고 있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합법' 된 무차별 위치 정보 수집
국가가 24시간 국민 개개인의 위치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이른바 '코로나 추적 앱'은 최근 감염 피해가 확산하는 유럽을 중심으로 속속 도입되고 있다. 지난달 16일 노르웨이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추적 앱 '스미테스토프'(감염방지)를 도입한 데 이어, 영국과 독일·프랑스도 비슷한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 추적 앱 기술은 모든 스마트폰의 위치 정보를 한곳에 모아 관리하는 '중앙 집중형' 감시 시스템으로 작동된다. 코로나 추적 앱이 설치된 스마트폰은 단거리 무선통신 기술인 블루투스로 같은 앱이 설치된 다른 스마트폰이 2m 근방에 3분 이상 머문 경우 그 스마트폰의 고유 번호를 저장해둔다. 이후 앱 사용자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면 해당 스마트폰 고유 번호가 입력된 접촉자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송한다. 중앙정부는 앱을 통해 24시간 수집한 스마트폰의 GPS 정보로 확진자 동선을 파악한다.
러시아는 아예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 사전에 정부 운영 웹사이트에 동선을 밝히고 정부가 발행하는 QR 코드를 받도록 하고 있다.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주요 고속도로에서 검문원이 스마트폰에 저장된 QR코드를 검사하는 방식이다. IT(정보기술) 전문 매체 쿼츠는 "엄격한 개인 정보 보호에 앞장섰던 유럽 국가조차 코로나 앞에서는 전례 없이 시민에 대한 디지털 추적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방역 효율이냐, 프라이버시냐
중앙집중형 추적 방식을 도입하는 각국 정부는 감염병 관리에 대한 '효율성'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바이러스 전파 추적은 시간 싸움이기 때문에 빠르게 대처하려면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의 정보를 한곳에 모아야 한다는 논리다.
중국 상하이는 2월 말부터 코로나 감염 상태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눈 QR코드 형식의 '건강 신분증'을 시민에게 발급했다. 코드가 있어야 지하철·버스·택시를 이용할 수 있어 동선 정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구 2400만명의 상하이는 이 앱 도입으로 지난달 중순 확진자가 607명에 그쳤다. 코로나를 명분으로 시작한 국민 감시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아예 코로나 이후 위치 정보 수집을 합법화했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르면 보건 당국은 역학 조사 목적에 한해 별도 절차 없이 국내 이동통신사, 카드사로부터 확진자의 스마트폰 위치 정보와 신용카드 결제 정보, CCTV 영상을 바로 받아 분석할 수 있다. 이전에는 위치 정보 수집에 두 시간 넘게 걸렸지만, 지금은 10분이면 끝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코로나가 심각할 땐 논란이 없었지만 사실상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의 모든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엔 어쩌나
문제는 각국 정부에서 코로나 이후 중앙 서버에 확보해둔 개인 정보가 어떻게 사용될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앞으로 2주가 지난 확진자 동선 정보는 삭제하기로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4일 네이버, 구글, 페이스북 등 업체에 2주 지난 확진자 동선 정보를 삭제하도록 요청했다.
이에 대해 IT업계 관계자는 "3개월째 동선 정보를 방치했다가 뒤늦게 대응에 나선 것"이라며 "자발적 삭제 요청이고, 이미 퍼져 나간 개인 정보를 완전히 없애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부분 해외 국가에서는 코로나 추적 앱을 통해 확보한 개인 위치 정보 등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영국 컴퓨터 보안·프라이버시 전문가 177명은 최근 정부의 코로나 추적 앱의 투명성을 우려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