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이 이 장관이 대한민국 온라인 세상에 등장한다. 그의 발언은 하나하나 정리돼 ‘어록’에 수록된다. 말투를 모방하는 유행까지 생겨났다. 한국 정치인이 아니라,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39) 일본 환경성 장관이다.
고이즈미 환경상은 최근 어떤 한국인 정치인보다도 한국 네티즌 사이에서 높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뚱딴지같은 발언이 갑자기 인터넷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 소재 등을 뜻함)’으로 승화됐기 때문이다. 일종의 ‘놀림감’이다. 게다가 그런 그가 알고 보니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일본 총리의 둘째 아들이자 집권 자민당 소속 4선 중의원(국회의원)이고, 아베 신조 현 총리 뒤를 이을 차기 주자 후보로도 거론된다는 사실 때문에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그가 처음 한국 젊은이들에게 이름을 알린 가장 큰 계기는 ‘펀쿨섹’ 발언이다. 그는 환경상이 된 직후인 2019년 9월 UN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뉴욕에 갔다가 현지 행사에서 기후변화대책에 대해 영어로 한마디 했다. “기후변화 같은 스케일이 큰 문제를 다루려면 즐거워야 하고, 멋져야 하고, 섹시해야 한다(it's got to be fun, it's got to be cool. It's got to be sexy too)”는 말이었다.
발언은 즉각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전해졌고 일본에서 파문이 일었다. 후지TV에 따르면 다음날 일본 기자들이 달려들어 “어떤 의미로 즐겁고 쿨하고 섹시한 대책이 돼야 하느냐”며 캐물었다. 그러자 고이즈미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는 것 자체가 섹시가 아니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다시 “쿨(멋지게)이라는 건 알겠는데, 섹시는 회견에서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말인데요”라고 하자 같은 답을 반복한 뒤 “동석자와 회담 중 나온 단어였다. 촌스러운 설명은 필요 없다”고 했다. 야당에선 즉각 “기후변화에 필요한 건 즐거움도, 쿨도, 섹시도 아니고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이 사건이 한국에도 알려지며 고이즈미는 펀(즐거움), 쿨(멋짐), 섹시의 글자를 따 ‘펀쿨섹’ 장관, ‘펀쿨섹 좌’로 불리게 됐다.
한 번이었다면 해프닝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게 문제였다. 고이즈미는 ‘펀쿨섹’ 발언에 앞서 동일본 대지진으로 방사능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현을 방문한 자리에서 “2045년 3월까지 현 밖에서 (제염 작업 폐기물을) 최종 처리하는 게 큰 과제인데, 전망에 대해 견해를 말해달라”고 요청받았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 제염 폐기물을 중간시설에 저장했다가 30년 안에 후쿠시마현 밖으로 옮기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고이즈미 환경상은 “제 안에서 30년 뒤를 생각할 때, ‘30년 뒤의 나는 몇살일까’라고 재해 발생 직후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건강할 수 있다면 30년 후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인지 어떨지라고 하는, 그 고비를 두고보는 것을, 저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후쿠시마 건에 대한 부처 기자회견에서 ‘제염 처리장 약속’의 ‘근거’를 묻는 말에 단호한 표정과 어투로 “하겠습니다. 그것이 약속이니까”라고 답하기도 했다. 지구온난화와 관련해선 “지금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본은 지금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어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코로나 사태 초기인 지난 2월 16일엔 지역구 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정부의 코로나 대책 회의에 불참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며칠 뒤 이 건을 두고 야당 의원이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말하자 그는 “반성하고 있다. 다만, 이건 제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반성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반성을 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은, 저 자신의 문제라고 반성하고 있다”고 말해 사람들을 당황시켰다. 그는 이날 사과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하기 위해 반성이란 단어만 20번 썼다고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일본에선 모호하고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없는 그의 발언을 ‘고이즈미 포엠(시)’이라고 부르고 있다.
잇따른 ‘구설’에 순탄했던 정치 인생은 위기를 겪는 모양새다. 고이즈미 환경상은 2007년 아버지인 고이즈미 전 총리의 비서로 정계에 발을 들였고, 28세인 2009년부터 4연속 중의원에 당선된 ‘정치 금수저’다. 잘생긴 외모도 한몫하며 일본 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그의 형도 배우로 활동 중이다). 국회의원으로서 이미지를 잘 지켜온 그는 내각 입성 직후인 지난해 10월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조사한 ‘차기 정권 총리에 어울리는 사람’ 설문에서 20%로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현직 아베 총리는 당시 16%로 3위였다.
하지만 지난달 발표된 ‘차기 총리로 적당한 인물’ 조사에선 각각 9.3%(FNN·3위), 13%(아사히신문·2위)로 하락했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선 아베 현 총리가 후보 선택지에서 빠져 있었기 때문에 실제 지지율은 더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계속되는 헛발질에 일본 젊은이들은 “고이즈미가 부끄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름만 언급해도 한숨을 쉬기도 한다. 30대 회사원 나카가와씨는 “한국인들이야 남의 나라니까 마음 놓고 놀리는 거지, 일본인으로선 웃기만 할 수 없다”고 했다.
고이즈미가 ‘명언’으로 유명했던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노력 중이라거나, 인지도를 높이려는 전략에서 일부 오류가 발생한 것이란 시각이 없지는 않다. 심지어 “일부러 어수룩한 척하는 것”이란 옹호론도 있다. 하지만 싸늘한 민심이 다수인 건 분명해 보인다. 그는 지난달 말 쓰레기봉투에 그림과 메시지를 그려 넣어 코로나 사태에 분투하는 환경미화원을 응원하자고 제안했는데, “한가한 정책” “유치원생이냐” 등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