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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국내 금융사들이 해외시장 진출에 다시 한 번 드라이브를 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상반기 곤경에 처한 기업·소상공인 금융 지원에 집중해왔던 금융사들이 더 큰 무대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금융사들엔 저성장·저금리에 고령화까지 맞물린 국내 시장이 좁다. 성장의 한계도 뚜렷하다는 평이다. 하지만 해외시장은 다르다. 금융사들은 베트남·인도네시아·미얀마·캄보디아·필리핀·라오스·말레이시아 등 아세안(ASEAN) 국가에 주목하고 있다. 2030년 세계 5대 경제권으로 도약할 것으로 전망되는 아세안 지역은 20억 인구의 평균 연령이 아직 30대인 '젊은 나라'들이다. 성장 잠재력이 여전하고 한국의 선진 금융 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크다. 이 때문에 금융사들은 이른바 '신(新)남방'으로 불리는 동남아시아 국가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신남방국가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장차 전체 순이익 30% 이상을 국외 시장에서 벌어들이겠다는 포부다.

◇한국이 좁은 금융사들…'젊은' 동남아에 집중

이미 국내 은행들은 지난 몇 년 동안 금융 영토 확장에 매진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해외 점포 수는 지난해 1000개에 육박했고, 총자산과 당기순이익에서 글로벌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 7%까지 성장했다. 김태영 전국은행연합회장은 작년 말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금융 환경이 녹록지 않은 만큼 적극적인 현지화·디지털 기반 해외 진출 전략을 통해 글로벌 진출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며 해외 진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형 금융그룹들이 10년 내 총자산·당기순이익 해외 부문 비중을 20% 이상 확대해 시가총액 30조원을 달성하자는 '10·20·30' 전략도 제시했다.

신한금융그룹은 해외에서 단연 돋보이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은행장이던 2015년부터 강조했던 '고도화된 글로벌 성장전략'이 결실을 거뒀다는 평이다. 실제 신한금융의 해외점포(지점 및 사무소) 숫자는 2015년 19국 151개에서 지난해 20국 221개까지 늘었다. 해외 사업의 순이익 기여도는 2015년 7.3% 수준에서 2019년 11.7%로 뛰어올랐다. 신한은행 베트남 현지 법인은 지난해 1259억원을 벌어들이며 '성공 신화'를 썼다. 올해부턴 매년 영업점을 5개 이상씩 추가해 베트남 내 영업점을 크게 늘린다는 계획이다.

하나금융도 글로벌 영업 확장에 큰 공을 들이는 금융사 중 하나다. 하나금융은 지난 1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올해 해외 점포 26곳을 신설할 계획을 밝혔다. 대만 타이베이, 인도 뭄바이, 인도 벵갈루루 지역에 지점을 신설하고 중국 현지법인 하나은행유한공사의 지점 23곳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베트남에서는 베트남 자산 규모 1위 은행인 BIDV(Bank for Investment and Development of Vietnam)에 1조원 규모의 전략적 지분 투자에 성공했고,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은 네이버 자회사 '라인'과 함께 디지털 은행 관련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중국 현지법인은 중국 대표 지급결제 플랫폼 알리페이와 손잡고 모바일 대출 서비스를 출시했다.

올해 미얀마·캄보디아에 신규 출점을 준비 중인 KB국민은행은 이달 초 글로벌산업본부 아래 글로벌사업부·IT글로벌개발부를 신설했다. 각각 해외 인수·합병(M&A)과 사업 제휴, 해외 전용 디지털 플랫폼 등을 개발·총괄하는 부서다. 국민은행은 새 부서를 중심으로 전문 인력을 보강해 현재 전체 순이익 대비 2% 수준인 해외 순이익 비중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미 지난달 캄보디아 소액대출금융 업계 선두 업체인 '프라삭 마이크로파이낸스'를 인수하며 캄보디아 영업망 확충에 성공했다.

IBK기업은행 역시 중소기업의 현지 진출을 지원한다는 목표 아래 국내 기업 진출이 활발한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12국에 59개 점포를 운영 중이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하던 지난 4월에는 중국·베트남을 잇는 차세대 글로벌 생산기지로 주목받는 미얀마에서 현지법인 인가를 따냈다.

◇증권사, 홍콩 거점으로 아시아 시장 진출

증권사들 역시 홍콩을 중심으로 해외사업 순이익 비중을 불리는 중이다. 작년 국내 14개 증권사 해외법인 52곳은 2126억원에 달하는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전년 대비 48.5% 늘어난 수치다. 증권사들의 해외 순이익 절반은 홍콩에서 나왔다. 특히 1년 사이 국내 증권사 홍콩법인 순이익은 68%나 뛰었다. 대형 증권사들이 홍콩법인을 중심으로 아시아 시장 진출을 꾀한 덕분이다. 비록 코로나로 전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증권사들은 1분기(1~3월)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시장이 안정화되는 2분기(4~6월)부터는 본격적인 해외 법인 실적 개선을 꾀한다는 방침이다.

해외에 가장 많은 점포를 낸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다. 미래에셋대우는 해외에 현지 법인 11개, 사무소 3개를 두고 있다. 지난해 해외 법인을 통해 거둔 순이익은 1709억원으로, 전체 순이익에서 19%를 차지했다. 국내 증권사 중 해외 법인 순이익 1000억원대를 돌파한 첫 증권사다. 특히 미래에셋대우 홍콩법인은 유럽 최대 바이오테크 업체인 바이오엔텍과 아시아 최대 물류 플랫폼 업체인 ESR의 해외 기업공개(IPO)에 공동 주관사로 선정되며 두각을 나타냈다.

대신증권은 업계 최고 수준의 IT 기술력을 바탕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세를 넓히고 있다. 2016년부터 현지 업체와 MOU(양해각서)를 맺고 태국에 진출한 대신증권은 지난해 5월부턴 온라인 주식거래 시스템인 '트레이드 마스터' 서비스를 개시했다. 현재 뉴욕·런던·싱가포르·홍콩·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7국에 현지 법인을 두고 있는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현지 법인들의 IB(투자은행) 역량 강화에 힘쓴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