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국 베이징 하이뎬병원 격리 병동에 음식 50인분을 실은 무인 자율주행차가 도착했다. 이곳에서 300m 떨어진 한 식당에서 실어나른 것이다. 이 병원 의료진 100여명의 음식 배달을 책임지는 이 '식사 당번'은 중국 바이두가 스타트업 네오릭스와 함께 개발했다. 바이두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무인 자율차 104대를 우한을 비롯한 17개 도시 병원·공원·물류 단지 등에 공급해 음식이나 의료용품 배송뿐 아니라 소독제 살포 등에 활용하고 있다. 무인차는 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에게 경고 메시지를 날리는 역할까지 한다.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있는 메이요병원은 최근 코로나 진단 키트를 무인 자율차로 옮기고 있다. 이 차는 드라이브 스루 검사소에 진단기를 가져다주고, 회수해오는 역할을 한다. 프랑스 자율주행 셔틀 업체인 나브야가 공급한 것으로, 사람은 태우지 않고 진단 키트만 싣기 때문에 완벽한 '비(非)대면'이 가능하다.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수요가 높아지면서 '무인 자율주행 기술'이 유용하게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우버와 같은 '차량 공유' 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으며 '모빌리티 혁신'이 뒷걸음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모빌리티 업체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무인 자율주행 시대'는 더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 이후 목표 재정립

자율주행 관련 기업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자율주행 차량 개발 목적을 '여객 운송'에서 '화물 운송'으로 재정립하고 있다. 구글의 웨이모는 그동안 사람을 실어나르는 '로보 택시' 개발에 집중해왔지만, 최근엔 자율주행 물류·배송 서비스를 위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웨이모는 최근 물류 업체 UPS, 대형 마트 월마트와 파트너십을 맺고 자율주행차를 활용한 배송 시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로보 택시'는 운전기사가 없는 '무인 택시'여야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이지만, 현재까지는 기술적·법적 제약 때문에 안전요원이 운전석에 타야 한다. 손님의 요구대로 예측 불가능한 목적지를 다녀야 하는 '로보택시'와는 달리, 정해진 구역에서 정해진 루트를 다니도록 설계된 무인 자율차는 기술적으로 훨씬 수월하다. 최근 북미에선 상품·음식 무인 배달과 관련된 20여 기업이 60억달러(약 7조3000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자율주행 스타트업 포니.ai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서 현대 코나 전기차를 개조한 자율차로 음식·식료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아시아 음식 주문 앱인 '야미바이'를 통해 주문하면, 자율차가 집 앞에 도착하고 고객은 트렁크에서 물건을 꺼내기만 하면 된다.

중국에선 중국 최대 AI 기업인 바이두가 무인 자율차 시대를 이끌고 있다. 최근엔 5G를 기반으로 한 V2X(차량과 주변 시설을 연결해 상호 소통) 기술을 적용한 새로운 도시 관리 시스템 'ACE 엔진'을 개발 중이다. V2X를 활용한 이 시스템은 더 안전하고, 더 경제적이고, 더 효율적인 자율주행을 도와 무인 배송·소독·순찰·택시 등을 일상화할 수 있다. 중국의 10개 도시가 이 ACE 엔진을 활용해 스마트 시티를 구축 중이다.

한국에서도 자율주행 기술을 무인 배송·운송 등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대부분 실증 연구 단계에 있고 실제 서비스를 본격화한 사례는 많지 않다. 인천공항은 공항 실내에서 노약자 등의 짐을 옮겨주는 '자율주행 카트 로봇'을 시범 운영 중인데, 오는 10월 정식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 2위 자동차 부품사 만도는 자율주행 순찰차 '골리'를 개발해 7월부터 시흥 배곧신도시 생명공원에 투입하기로 했다. 야간에 CCTV 사각지대 등을 집중 촬영해 관제센터에 보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아직 무인 택배, 무인 소독 등에 자율주행 기술을 활용하는 사례는 국내에서 찾기 힘들다. 유시복 자동차부품연구원 자율주행기술센터장은 "국내에도 기술력이 있는 스타트업들이 있지만, 자본력이 부족해 당장 수익이 되지 않는 다양한 사업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며 "현재로선 정부 프로젝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한국의 규제 환경 때문에 경험과 기술 이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일단 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법을 만드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인 미국·중국에선 기업들이 오래전부터 자율주행 데이터를 축적해왔지만, 우리는 2016년에서야 자율차가 일반 도로를 임시 운행 허가를 받아 다닐 수 있었다"며 "앞으로 정부 지원과 민간 투자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