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변론을 하고 싶습니다.”

지난 5일 광주고법의 한 법정. 재판장에게 이날 마지막 변론 기회를 얻은 법무법인 광장의 김명섭(55) 변호사는 입을 떼려는 순간 갑자기 쓰러졌다. 목격자들은 “고목 쓰러지듯 순식간에 쓰러졌다”고 했다. 광주고법 바로 옆 조선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된 그는 뇌출혈로 판명돼 지난 8일 숨졌다.

변호사가 법정에서 변론 중 쓰러져 사망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김 변호사는 매일 아침운동을 할 정도로 부지런한 성격이어서 주위에서 받는 충격도 컸다. 광장 내부에선 “과로사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는 전도유망한 변호사였다. 지난 1989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회계법인에 근무하다 199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중 로펌들이 특히 영입하고 싶어하는 조세(租稅)조 출신으로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법 등에서 오랜 기간 조세 관련 재판을 했다. 서울시지방세심의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김명섭 변호사

서울행정법원에 근무할 때 별명이 ‘조세 맥가이버’였다. 조세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판사들이 그를 찾아 질문을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실무와 관련된 기본 이론들을 정리할 기회”라며 한 번도 이런 질문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광장에 합류한 것은 2016년이다. 그와 친분이 있는 법조인은 “늦둥이 딸을 생각해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김 변호사의 고향은 전남 나주다. 그는 주변에 “그동안 일이 바빠 부모님을 뵌 지가 오래 됐다”며 쓰러지기 하루 전인 4일 고향 집을 찾아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그는 어머니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광주고법으로 갔다. 부모가 살아 있는 아들을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김 변호사는 대학생 딸과 초등학생 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변호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진중하고 성실한 법조인”이라고 했다. 그는 인문학 서적을 읽는 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그는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톨스토이의 ‘삶의 아름다움은 미래를 위해 무엇이 좋을지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는 문구를 좋아한다”며 “지금 행복해야 한다. 지금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마라. 지금 행복하지 못하면 지금의 행복은 영원히 찾을 수 없다. 지금 행복하려면 욕심을 조금 버리면 된다. 행복하기 위하여 어떠한 조건도 필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