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 시각)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화상회의 앱(프로그램)인 줌(Zoom)은 홈페이지에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는 반성문(反省文)을 올렸다. 줌은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이 터진 뒤 단숨에 세계 이용자 3억명을 확보했다.
로이터와 줌 홈페이지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이달 초 줌에 톈안먼 민주화 시위 31주년을 추모하는 온라인 화상회의 4건과 이 모임을 주도한 4명의 계정을 폐쇄하라고 요청했다. 중국 측은 "중국 현지법에 따라 이런 모임은 불법"이라고 했다. 줌은 중국 현지인 접속이 없었던 한 회의를 뺀 세 회의와 개설자 계정을 폐쇄했다. 이 화상회의에서는 중국 현지인 수십~수백 명이 톈안먼 시위 애도를 하고 있었다.
실수는 문제가 된 계정 소유자가 중국이 아닌 미국(2건)과 홍콩(1건) 거주자로 중국법 관할이 아닌데도 계정을 폐쇄한 것이다. 따라서 화상회의 자체를 폐쇄한 것도 잘못이라고 줌은 밝혔다. 줌은 "3명의 개설자 개정은 복구했다"며 "앞으론 특정 지역에서 참여하는 접속자만 화상회의에서 배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줌은 본사는 미국이지만 창업자가 중국 산둥성 출신의 위안정(袁征·에릭 위안·50)인 탓에 '중국 스파이'란 의심을 받아왔다. 이제 '제2의 화웨이'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미국·중국 간 대립에 인터넷 기업도 어느 한편에 설 것을 강요받고 있다. 15초짜리 짧은 동영상을 공유하는 틱톡도 줌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인 틱톡은 코로나 사태 이후 하루 최대 이용자 8억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틱톡의 모(母)기업은 중국의 바이트댄스다. 미국에선 틱톡이 아동의 사생활 정보를 수집하고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올 5월 미국 하원의 민주당 의원 14명은 연방거래위원회(FTC)에 틱톡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13세 미만 이용자의 정보를 부모 승낙 없이 수집했다는 것이다. 미국 국토안보부와 육·해군은 장병들의 틱톡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미국에선 '줌과 틱톡 같은 중국 인터넷 서비스는 중국 정부에 각종 정보를 넘기는 적대 행위를 할 것'이라는 여론이 비등하다. 예컨대 줌도 이번에 반성과 재발 방지를 발표하긴 했지만,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중국 정부의 요청이 있을 시엔 언제든지 중국 현지인의 화상회의 접속을 차단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세상을 미·중 양편으로 나누는 것은 중국이 먼저 시작했다. 구글·페이스북·트위터 등 미국 인터넷 서비스는 9~11년 전부터 중국에선 접속이 안 된다. 한때 미국 기업들은 중국 인터넷 시장에 재진입하기 위해 중국 정부에 구애했다. 예컨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는 5년 전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어로 환담하면서 태어날 딸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구글은 2년 전 중국 정부의 검열 정책에 따르는 중국 전용 검색 엔진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끝까지 미국 기업을 차단했고, 그 벽 뒤에서 웨이보와 같은 중국 토종 기업이 내수 시장을 장악했다.
미국 인터넷 기업들은 중국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다. 11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은 트위터가 최근 3개월간 중국 정부와 연계된 가짜 트위터 계정 17만4000개를 색출·삭제했다고 보도했다. 이 계정들은 대부분 홍콩 민주화 시위나 코로나와 관련한 이슈에서 중국 공산당의 입장만을 지지하거나 칭찬하는 글을 올렸다. 트위터 측은 "중국 정부를 옹호하는 글을 쓴 2만3750개 계정과 이런 내용을 리트윗해 확산한 15만여 계정을 모두 삭제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은 이달 초 중국 최대 뉴스통신사인 신화통신 계정에 '국영 매체'라는 경고 딱지를 붙였다. 신화통신이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변 언론이란 것이다. 구글은 이달 초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해커가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캠프 직원의 이메일을 해킹하려 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구글은 이런 사실을 미국 연방 사법 당국에 통보했다.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정치와 외교적 문제에서 명확한 기준을 바탕으로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면 테크 기업들은 결국 이리저리 휩쓸리다 이용자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