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이수연(가명·46)씨에게 작년 8월 13일은 기억하기 싫은 하루다. 그날 밤, 남편은 또다시 이씨를 때렸다. “에어컨 리모컨이 안 보인다”는 이유였다. 놀란 중학생 딸들이 가로막았지만, 남편은 막무가내였다. 아내 얼굴과 온몸을 마구 때렸다. 경찰이 출동했고, 아내는 전치 4주 진단을 받았다. 남편은 그 길로 집을 나갔다. 법원은 지난 4월 남편 A(50)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7년간 총 네 차례 아내를 폭행한 혐의였다.
집 나간 남편은 작년 10월 이씨에게 이혼 소송을 걸었다. 지난 5월에는 아내와 딸들이 사는 전셋집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세 모녀는 길거리에 내몰릴 처지다. "두 딸과 살 집도 빼앗아가는 남편인데 양육비를 제대로 줄까요." 이씨는 "차라리 남편이 이혼 소송을 취소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씨처럼 이혼하고 싶어도 양육비 못 받을까 무서워 마지못해 살거나, 갈라선 뒤 양육비 때문에 생활난을 겪는 가정이 많다. 양육비가 이혼의 아킬레스건이 됐다.
남편에게 맞고도 이혼 못 해
2015년 출범한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양육비 이행 의무가 확정된 1만6073건 중 실제 양육비를 받은 건 5715건(35.6%). 나머지 64.4%는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양육비 미지급률이 높은 건 채무자가 양육비를 주지 않고 버텨도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법원이 내린 양육비 지급 명령을 위반해도 가장 큰 처벌이 감치 명령에 불과한 데다, 이마저도 6개월간 구인하지 못하면 무효가 된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시민 단체 '배드파더스' 구본창 대표는 "양육비 채무자가 재산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돌려놓고 잠적해 버리면 양육비를 받아낼 도리가 없다"고 했다.
선진국들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양육비 채무자를 제재한다. 프랑스는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를 두 달 이상 지급하지 않을 경우 가족 유기 범죄로 보고 2년 징역을 내린다. 미국은 양육비 채무자의 여권 발급을 중단하고, 급여나 세금 환급금에서 양육비를 강제 징수한다. 독일도 양육비 미지급이 계속 되면 최장 3년 징역에 처한다.
양육비는 남녀 불문, 생존 문제
자녀를 키우는 한 부모 가정에 양육비는 생존 문제다. 양육권자 홀로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2018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한 부모 가정의 월평균 소득은 약 220만원으로 전체 가구 평균 소득인 389만원의 57% 수준이었다.
2004년 남편과 이혼한 최수영(가명·57)씨는 남편의 양육비 없이 홀로 아이를 키웠다. 법원은 남편이 이혼 당시 10·12세였던 자녀 한 명당 3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지만, 전 남편은 "남은 재산이 없다"고 버티며 양육비 지급을 거부했다.
지급하지 않은 양육비가 9000만원을 넘는 동안 가정은 파탄이 났다. 최씨 홀로 전단 아르바이트, 카드 중개인 등 갖은 잡일을 하며 두 자녀를 키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병을 앓던 아들은 작년에 행방불명됐고, 딸은 자동차 협력업체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다. 최씨는 16년째 신용 불량자 신세다.
양육비 문제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최근 전북에서 이혼 직후 잠적했던 여성이 소방관 딸이 순직하자 32년 만에 나타나 유족 급여를 받아 간 사건이 알려졌다. 여성 B(65)씨는 1988년 남편과 이혼한 이후 한 번도 양육비를 지급하거나 딸을 찾은 적이 없었다. 남편은 30년간 홀로 배추, 수박 장사를 하며 두 딸을 키웠다. 그러다 작년 11월 작은딸이 순직하자 B씨가 갑자기 나타나 유족 급여 등 8000만원을 받아 갔다. 법원은 "부모의 자녀 양육 의무는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고, 양육비도 공동 책임"이라며 B씨가 전 남편에게 두 딸의 과거 양육비 770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남녀를 불문하고 양육비를 안 주는 건 아동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란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달 20일,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양육비 지급 이행을 강화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내년부터는 비양육자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를 거쳐 비양육자의 운전면허를 중지할 수 있다. 또 정부가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월 20만원까지 지원하고, 비양육자가 이를 갚지 않으면 국세 체납 처분 형태로 징수할 수도 있다. 다만 원안이 담고 있던 형사처벌, 출국 금지 등 채무자 처벌 방안은 상임위 단계에서 빠졌다. 이영 대표는 “양육비는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채무자를 강력히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